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고현진 前사장의 거짓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6.06 09:37

수정 2014.11.07 17:10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다.(I wanted to wring Bill’s neck.)”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뉴욕주 상원의원은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회고한 ‘역사를 만들며 살다’에서 클린턴에 대한 배신감을 이같이 표현했다.

클린턴은 대배심 증언을 통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을 시인하기 며칠 전까지 힐러리에게 거짓말을 했고 힐러리는 그 때까지 음해성 스캔들이라고만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불륜’이었다. 힐러리가 클린턴에게 치를 떨 수밖에 없었던 것은 클린턴의 불륜보다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최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에 취임한 고현진 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의 거짓말도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혀를 내두르게 한다.
기자는 지난 4월말 소프트웨어업계로 출입처를 옮기자마자 고사장의 사직설을 업계 관계자들을 통해 들었다. 루머일 수 있다는 생각에 본인에게 직접 e메일을 통해 물었다. 고사장이 평소 거짓말을 안한다는 주위의 이야기를 믿고 솔직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고사장의 답장이다.

‘세상에 이런 질문을 바로 해도 되는 겁니까? 하지만 그래도 답변을 드리지요.(중략) 등기임원인 대표이사의 경우는 상법상의 계약형태로 돼 있어서 애니타임 목아지일 수 있습니다.(중략) 저도 3년차인 작년에 무수한 기대와 루머를 한몸에 모으면서 안잘리고 아직 다니고 있습니다. 이 자리가 좋아 보여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혹은 제가 미워서 그런 건진 모르겠는데 다 낭설입니다. 제 의사로 아무때고 그만둘 수 있고 본사의 의사로도 아무때고 그만 둘 수 있습니다. 죽자고 다닐 수도 있고요. 좋은 내용 취재하시기 바랍니다.’

그뒤 한참 지났다. 5월초 정보통신부에서 고사장이 소프트웨어진흥원장에 취임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5월15일자로 ‘고사장, 사실상 소프트웨어진흥원장 내정’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다뤘다.

이쯤되자 한국마이크로소프트 고사장은 더 이상의 부인을 하지 않았고 대신 홍보담당자들을 불러모아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 한편 “가면 좋은 거냐?”고 의중을 떠보는 등 끝까지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홍보담당자들은 고사장의 이같은 이중성 때문에 최종 발표가 임박할 때까지도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1주일 뒤 고사장은 소프트웨어진흥원장에 취임했고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취임하기 전인 지난 1월 정통부 직원으로부터 원장 제의를 처음 받았다.
1개월 뒤 정식으로 제안을 받고 시켜줄 때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 수락했다.”

기자에게 부인해야만 했던 고사장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사실무근인 척, 정통부에서 마치 막무가내로 원장자리에 앉힌 것처럼 감쪽같이 연기한 그를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중차대한 소프트웨어산업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 fairyqueen@fnnews.com 이경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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