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에서] 조령모개식 자동차정책

박찬흥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6.06 09:37

수정 2014.11.07 17:10


중국 한나라 시절, 재정 경제에 밝았던 어사대부 조착(晁錯)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당시 과중한 세금과 잦은 부역으로 고통을 겪는 백성들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황제인 문제(文帝)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조착은 논귀속소(論貴粟疏)라는 제목의 상소문에서 ‘홍수와 가뭄이 있을 때마다 세금과 부역을 동원하니 백성들의 원성이 높다’고 호소했다. 그는 ‘부역과 세금징수는 일정한 때도 없고 아침에 내려진 법령은 저녁에 바뀐다’며 일관성 없는 정책을 질타했다. 그 유명한 조령모개(朝令暮改)는 바로 이때 나온 말이다.

요즘 한나라의 조착이 외쳤던 조령모개의 교훈을 다시 일깨워주는 일이 있다. ‘뒤집고 또 뒤집는’ 자동차정책이 그 것이다.

올들어 우리 정부의 자동차 정책은 그야말로 갈팡질팡 대혼란에 빠진 듯하다.
디젤승용차 시판시기를 놓고 정부 부처간에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리고, 경차 규격을 확대하겠다는 발표는 단시간에 재수정되는 해프닝을 낳았다.

이러한 정책혼선은 자동차업체에 치명상을 안겨주고 있다.

당초 경차규격 확대방침으로 마티즈 후속모델(M-200)의 개발 중단까지 선언했던 GM대우는 최근 정부가 경차규격 확대 유예기간을 2008년으로 연장하자 일단 신차개발 재개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GM대우는 이 과정에서 이미 2000억원이 투여된 ‘M-200’개발 계획을 포기할 뻔했다. 또 기아차는 정부방침에 따라 배기량 1000㏄급 경차(SA)를 내년초 출시할 계획이었으나 정책이 바뀌자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자동차정책은 이 뿐만이 아니다. 디젤엔진을 장착한 경유승용차의 시판 문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난 3월 정부는 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오는 2005년부터 경유승용차 시판을 허용하기로 장관끼리 합의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디젤승용차 시판을 사실상 불허하는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하면서 디젤승용차 시판 허용결정을 다시 뒤집었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0일 정부 부처간 난상토론 끝에 최종적으로 2005년 경유승용차 허용방침이 확정됐다. 그야말로 조령모개식 자동차 정책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이처럼 오락가락한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자동차업체들이다. GM대우와 르노삼성차는 “정부가 방침을 늦게 결정하는 바람에 경유승용차 준비기간이 줄어들게 됐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지금 세계 자동차시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와 다름없다. 미국, 일본 등 자동차 선진국들은 신차 개발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글로벌 마케팅망을 풀가동하면서 국제시장 석권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우리기업들은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이제 정부는 체계적인 정책수립으로 한국기업이 세계무대에서 쾌속질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할 것이다. 아침의 법령이 저녁에 바뀌는 조령모개식 정책이 아닌 백년대계의 정신이 담긴 정책이 시급한 것이다.


중국 한나라 조착이 남긴 교훈이 다시 떠오르는 때다.

/박찬흥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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