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신한과 조흥 과연 절박한가

이장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6.11 09:39

수정 2014.11.07 16:59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조흥은행 매각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협상이 결렬되든 신한금융지주에 넘어가든 이달 안에 결론이 나올 전망이다. 대형화를 통한 은행경쟁력 강화란 명분을 씨줄로, 공적자금 회수라는 실리를 날줄로 엮으며 10여개월 끌어온 협상작업이 마지막 고비에 접어든 것이다.

물론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선 조흥은행 노조가 매각을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가격을 둘러싼 정부와 신한금융지주간의 시각 차이도 꽤 벌어져 있다.

필자가 여기서 누구의 편을 들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사자간에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는 문제의 본질을 짚어보려 할 따름이다.

가끔씩 눈앞에 펼쳐진 현상에 몰두하다 보면 그 현상의 배경과 흐름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무에 치중하다 보면 숲을 보지 못한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조흥은행과 신한금융지주, 정부가 그렇다. 숲(합병이 금융산업에 미치는 효과)을 보지 못한채 나무(가격, 대외신인도, 자존심, 노조, 외압설)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매는 것 같다.

왜 정부는 조흥은행을 신한금융지주에 넘기려 하는가부터 따져보자.

은행합병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금융의 대명제였다. 합병이나 퇴출 등 구조조정을 통해 오버뱅킹을 해소하고 덩치를 키워 국제금융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명분에서였다. 150조원의 공적자금이 은행에 투입됐고 12개의 은행이 간판을 내렸으며 수많은 은행원들이 거리로 쫓겨났다. 한때 26개에 달하던 시중 및 지방은행은 국민은행과 같은 초대형은행을 탄생시키며 현재 14개로 줄어들었으나 정부는 지금도 은행수가 많다고 판단하고 있다. 조흥은행 매각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은행에 버금가는 은행을 하나 더 만들면서 공적자금도 회수하는 효과가 있으니 정부로선 그야 말로 꿩 먹고 알먹기다.

현재의 국내경제 규모를 감안, 적정한 은행 수가 얼마인가는 논외로 치고 그럼 대형화를 통한 경쟁력이 과연 성과가 있었는지 짚어보자.

1999년 말 13.6%에 달하던 은행 부실채권비율은 지난 2002년 말 2.3%까지 내렸다가 최근 다시 2.7%대로 높아졌다.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 비율도 10%대를 웃돌고 있으며 수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하던 은행권은 지난 2001년과 지난해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등 외견상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익성 개선은 특정은행간 합병의 시너지 효과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점포 24% 폐쇄, 임직원수 39% 감축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물론 크게 보면 이것도 합병의 효과이긴 하지만). 더구나 합병의 효과는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융합에 의한 시스템 개선에서 나온다고 볼 때 제대로 합병의 시너지를 발휘한 은행은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지난해 부동산 담보대출 등 가계여신을 방만하게 운용하면서 부실채권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대형화를 통한 은행의 경쟁력 강화라는 대명제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진정 경쟁력 있는 은행은 부실채권을 꾸준히 처리하면서 자본충실도를 높이고 엄격한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에 의거, 잠재부실을 충분히 반영하면서 다양한 수익 포트폴리오를 구축,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리딩뱅크다. 그러나 대형화를 통해 탄생한 것은 리딩뱅크가 아니라 시장 지배자적 은행일 뿐이다. 지난해 국내은행들이 보인 경영행태는 선진금융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한 은행의 독주와 기타 은행들의 모방으로 점철했고 이는 오히려 금융불안을 초래했다. 대안연대 등이 은행의 대형화 정책이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점증시킨다고 꼬집고 나선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얻을 교훈은 있다.

우량은행간 합병으로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란 기대를 안고 출범했던 국민은행은 서서히 합병 피로증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부실은행간 합병으로 학계와 전문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던 우리은행은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두 은행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합병 당시 우리은행의 모태인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옛국민과 주택은행보다 합병에 더 절박했던 게 한가지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상업과 한일은 살기 위해 합칠 수밖에 없었고 옛국민과 주택은 살기 위해서라기보다 더 크기 위해 합쳤다. 두 은행 모두 합병 이후 문화충돌을 피할 순 없었지만 그 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합병하지 않았어도 살수 있었던 옛국민과 주택은 여전히 삐걱거리지만 죽다 살아난 상업과 한일은 상대적으로 잘 융화되고 괜찮은 수익력을 보이고 있다.


이제 신한과 조흥측에 묻고싶다. 신한은 조흥은행 인수가 얼마나 절박한가. 조흥은 (투쟁이 아닌 경영측면에서) 살기 위해 얼마나 절박하게 노력했는가. 지금 목마르지 않으면 인수해도, 독자생존해도, 초우량은행으로 발돋움하기 힘들지 모른다.


게다가 느긋하고 냉철해야 하는 재정경제부가 오히려 절박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이장규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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