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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모략] 中고대 처세술 현대적 재해석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6.12 09:39

수정 2014.11.07 16:57


■모략(전3권·차이위치우 외 34인 지음/들녘)

모략이라고 하면 우리는 나쁜 의미로 받아들인다. 왠지 모략이라는 말에는 남을 교묘하게 속이고 자신의 영리를 도모하는 나쁜 방법이라는 어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모략의 뜻은 지모와 방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음지에서 꾸미는 음모뿐만 아니라 양지에서 꾸미는 양모까지 포함하고 있다.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조조 군사를 궤멸시킨 것도 엄밀히 말하자면 지모와 방략으로 구성된 모략이다.

이제 모략에 대한 단편적인 선입견을 버리자. 모략은 ‘모든 사회 현상에 대한 인식과 그 인식을 바탕으로 정해놓은 가치관’일 뿐이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인간관계를 영위하기 위한 기술이자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로서 모략을 중요한 덕목으로 취급해왔고, 선인들의 지혜를 모략이라는 이름 하에 집대성해왔다.


차이위치우 외 34인이 저술한 ‘모략’(전3권)은 중국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방대한 지혜와 금언들을 종합하여 철저한 고증과 학문적 분석을 바탕으로 정리하고, 그것들을 현대적 의미에 맞게 재해석하고 있다. 총 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수많은 모략들을 정치, 통치, 외교, 언변, 간사, 경제, 군사의 7개 항목으로 분류하고, 각 모략마다 그에 걸맞는 현대사까지 동원하여 재미있게 해석하고 있다.

책에 소개된 모략 중의 하나를 맛보자. ‘난득호도(難得糊塗)’의 뜻을 아는가. 이는 멍청해 보이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청나라 때의 서화가이자 문학가였던 정섭(鄭燮·1693∼1765)은 어려서 집이 가난했지만 과거에 응시하여 관직에 올랐다. 그는 난과 죽을 잘 그려 세상은 그를 ‘양주팔괴’의 한 사람으로 꼽았다.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 농민들을 힘껏 돕고 어려운 일을 처리해주었으나, 그것이 도리어 권력가의 미움을 사 관직에서 쫓겨났다. 그때 그는 난득호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총명하기도 멍청하기도 어렵지만, 총명함에서 멍청함으로 바뀌기란 더욱 어렵다.”

이 말은 정치적 권모술수와 외교에서 사용될 수 있다. 즉,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듯이, 사람도 너무 깐깐하면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 때로는 조금 멍청한 척 하는 것이 지나치게 민감한 것보다 한결 유리하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모략과 관련된 현대사 하나를 끄집어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 정보부는 미드웨이 해전에 앞서 일본군의 암호 해독에 성공했다. 그러나 특종에 눈이 어두운 한 신문기자가 이를 신문에 보도하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은 이 심각한 사고에 대해 철저하게 멍청이처럼 행동했고 그 결과 일본의 정보기관도 더 이상 이 사건을 중시하지 않게 되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수천 년 동안 중국을 이끌어온 모략을 정리한 이 책은 어떻게 보면 파란만장한 인류 역사의 명멸에 관한 실질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는 음모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음모를 높이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모를 이해해야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jochoi@bookcosmos.com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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