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가을 정기국회에서 ‘퇴직연금제’ 도입을 위한 입법을 추진키로 함에 따라 84조8000억원(2001년 말 기준)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퇴직연금을 유치하려는 금융기관들의 치열한 물밑 작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업계의 순위가 바뀌는 등 금융시장의 일대 지각변동이 뒤따를 전망이다.
노사는 지난 2년 동안 노사정위원회에서 퇴직연금 도입 방안 논의를 통해 노측은 연금 수급액이 보장되는 확정급부형만을 주장한 반면 사측은 운용실적에 따라 수급액이 결정되는 확정 갹출형을 함께 허용할 것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시행연도인 내년에 총선이 치러진다는 측면에서 입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시장 지각 변동 불보듯=내년 7월부터는 퇴직금 사외적립이 본격화돼 금융시장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판도 변화는 우선 보험시장에서 시작되는 것을 필두로 투신업계와 증권시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퇴직연금 관련 단체보험시장을 선점하는 보험사는 입지를 굳힐 수 있어 초기 기회를 상실할 경우 사실상 만회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투신업계 역시 상품을 판매한 금융사가 자금운용을 전문기관에 맡길 수밖에 없어 운용 결과에 따라 수탁액 차이에 따른 사세가 판가름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시장 관계자들은 “증시로 유입될 자금 규모가 1조원 남짓에 불과할 것으로 보이지만 적립 규모가 커질 경우 증시 투입 규모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총선 맞물려 시행 어려울 수도=정부는 노후보장책인 국민연금 도입에 이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사회보장책으로 퇴직연금제 도입 방침을 정하고 지난 2001년 7월 노사정위에 논의를 요청했다.
노사정위는 퇴직금을 주식시장 수급 여건 개선에 활용하려 한다는 이유를 든 노측에 발목이 잡혀 1년이란 시간을 허비했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퇴직연금 도입을 임의 조항으로 하고, 확정 급부형과 확정갹출형을 동시에 허용하는 한편, 사외적립금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을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안을 노사정위에 제출했다.
그러나 노측은 “현재 퇴직금 적용대상이 아닌 4인 이하 사업장에도 퇴직연금을 적용해 줄 것과 수급액이 확정되는 확정급부형만 허용할 것”을 주장하며 반대했다.
치열한 노사 양측의 엇갈린 주장이 오가는 가운데 노동부는 노측 주장 중 4인 이하 사업장에도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방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견 대립으로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노사정위는 결국 논의를 마감하기로 했고 노동부는 올 정기국회에 관련 법안을 상정하기로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내년에 총선이 치러지는 관계로 ‘퇴직연금제’ 도입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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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ilk@fnnews.com 김종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