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상호투자협정(BIT)의 체결 조건으로 현행 스크린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일수 146일) 축소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놓고 국내 경제계와 문화계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최근 이창동 문화부 장관은 ‘BIT가 40억달러의 투자효과를 가져온다’는 재계의 주장은 근거가 취약하며 설사 그만한 투자효과가 있더라도 한국의 미래산업인 영상산업과 바꿀 수 없다고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권태신 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은 “연간 대미 수출액이 330억달러에 달하는데 비해 국내 영화시장에서 미국 영화 수입 비중은 2억달러에 불과하다”며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전 단계인 BIT가 스크린쿼터 때문에 발목을 잡힐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경부는 이미 국산영화 비중이 45%를 넘었기 때문에 영화업계의 이기주의를 보호하려고 (BIT를 맺지 못해) 수출산업에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영화계는 즉시 반발하며 환경권, 노동인권, 문화권 등이 파괴되는 한?^미 투자협정을 반대한다는 기자간담회를 갖고 스크린쿼터제 사수를 주장했다.
조속한 해결책을 기대하며 관망해오던 재계도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게 됐다.
재계는 그동안 우리 경제가 신정부 출범 전후의 반미감정으로 인해 양국간 갈등이 심화돼 투자유치 프로젝트마저 연기·보류되는 등 아픔을 겪어왔다고 강변했다.
재계는 특히 최근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내 투자자와 바이어들이 ‘바이코리아’ 행렬에 다시 합류하면서 우리 경제의 청신호가 켜지길 기대하고 있었다. 스크린쿼터제 때문에 우리에게 다가온 기회를 또다시 뺏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경련 현명관 부회장은 “국가의 더 큰 이익을 위해서 한발짝 양보하는 지혜도 필요한 시점”이라며 스크린쿼터제 축소로 BIT의 조속한 체결이 이뤄지길 희망했다.
선택의 시점이 다가왔다. 문화의 종속은 물론 국산 영화산업의 피폐를 주장하는 문화계나 대미수출 확대를 외치는 재계, 양측의 주장은 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자기네들만의 주장을 내세우며 이를 사수하려는 영화계의 집단이기주의적인 논리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그보다 먼저 어떻게 하면 우리 영화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까 하는데 머리를 싸매야 할 것이다.
/ mchan@fnnews.com 한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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