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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영 뉴욕포커스] 뉴욕증시 낙관은 이르다


뉴욕 증권가는 지난 2주 동안 온통 장밋빛 분위기였다. 주가의 거침없는 상승으로 1년여 만에 다우지수는 9000을,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500지수는 1000선을 뛰어넘는 등 3대 주요지수 모두가 지난 3월11일 저점에 비해 20% 이상 급등했다.

시장의 실제 내용도 강세장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였다. 거래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상승종목이 하락종목보다 많은 날이 늘어났다.

지난 12일 발표된 미국 개인투자자협회(AAII)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앞으로 강세장을 응답한 투자자가 전체 50%로 약세장을 전망한 투자자들 20.83%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한마디로 시장에선 뉴욕증시가 강세장으로 들어섰다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과연 뉴욕증시가 그토록 지루했던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온 것인가 하는 물음에는 아직 확답을 하기 어렵다. 산업 전반에 걸쳐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신호가 충분하게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물경제지표들은 여전히 긍정적이지 못하다. 미국의 4월 내구재 주문량은 전월보다 2.4% 감소했고 산업생산도 전월보다 1.9% 떨어졌다. 또한 5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 채권수익률도 향후 경기가 좋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보다 큰 문제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2 이상을 차지하는 소비자들이 인내력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월가의 낙관론자들은 이라크전쟁 종결 후 소비심리가 반등에 성공하여 실제 소비를 끌어올리고, 기업들의 투자 증가와 부시 행정부의 감세 정책 등으로 본격적으로 상승기류를 탈 것으로 전망했었다.

그러나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지 않고 있고 소비자들은 감세 프로그램에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세금을 깎아주고 금리도 사상 최저 수준인데 소비심리가 좋지 않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노동시장이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적한 대로 미국 경제는 언젠가는 회복되겠지만 취약한 노동시장은 지금 당장의 문제이다. 지난 6일 발표된 실업률은 9년 만의 최고치인 6.1%를 기록했다. 미국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미국내 임시직 근로자 수는 480만명이며 아예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는 870만명에 달한다.

이러한 실물 경제의 지속적인 위축을 반영해 주는 것이 지난 13일 발표된 미시간대학의 소비자심리지수이다. 전문가들의 예측과 달리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의 91.1에서 87.2로 추락해 뉴욕증시의 분위기를 냉각시켰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생산자물가이다. 5월의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보다 0.3% 하락했으며 이 역시 전문가들의 예상치보다 큰 폭이었다. 물가하락은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기업들의 수익구조가 약해진다는 측면에서 기업실적에는 악재가 될 수 있다. 이는 지난달 말 그린스펀 의장이 제기한 디플레이션 경고를 재현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따라서 하반기 기업실적이 개선된다는 기대감으로 랠리를 벌여온 주식시장의 입장에서는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또 한번의 금리인하 가능성을 마냥 좋게만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 기업들의 주가와 실적을 비교해 보아도 증시가 현재 결코 저평가돼 있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다우지수 구성종목들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29.15이며 S&P500 구성종목은 32에 달한다.

이밖에도 뉴욕증시에 악재가 될 잠재적 위험들은 많다. 지난해 다우지수가 9200을 돌파했다가 미끄러진 주된 원인이 높은 유가였음을 감안할 때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30달러를 넘고 있는 것도 주식시장의 먹구름이 되고 있다. 세계 2위의 모기지회사 프레디맥을 비롯하여 꼬리를 무는 대기업들의 회계부정 스캔들 역시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이렇다 할 호재가 없는 가운데 단기간 주가를 끌어올린 근본적인 힘은 투자자들의 ‘조바심’과 ‘기대’였다. 다시 말해 지난 몇주간 월가를 움직인 것은 경제의 펀더멘털이 아니라 투자자의 감정에 의한 것이었다. 투자자들은 새로 찾아온 듯한 강세장에서 소외될까 두려워 살 시기를 노렸고 주가가 흔들린다 싶으면 어김없이 매수 대열에 동참함으로써 주가를 끌어올렸다. 어느 정도는 달러화 약세의 덕을 본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S&P500 기업(에너지 업종 제외)의 매출은 올 1·4분기에 7% 늘었지만 이중 4분의1은 환차익이었다.


결론적으로 미국 경기가 회복된다는 신호는 아직 가시화되지 못했으며 증시의 추가상승 여부도 불투명하다. 따라서 미국경제 회복론에 힘입어 동반상승이라는 어부지리를 누리고 있는 국내 증시 역시 아직은 낙관하기 이르다.

특히 달러화 약세가 계속되고 달러화에 연동된 중국 위안화마저 약세를 보일 경우 설령, 뉴욕 증시가 계속 올라도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은 악영향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정삼영 미국 롱아일랜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