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요 상권에 위치한 상가들 대부분이 연초보다 평균 30% 이상 매출이 급감하면서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매출은 줄고 권리금은 절반 가까이 떨어졌으나 건물주는 임대수익을 맞추기 위해 보증금과 임대료를 내리지 않아 상인들의 장사 포기로 인한 매물도 늘고 있다. 하지만 하반기에 경기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창업수요가 뚝 끊겨 점포를 내놓아도 거래가 되지 않고 있다.
◇강남권=강남 테헤란로 이면도로변에 형성된 상권은 주5일 근무제와 경기위축으로 인한 매출감소로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선릉역 인근 한마음 부동산 양승삼 사장은 “부동산 중개업을 20여년간 했지만 요즘처럼 점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기긴 처음”이라며 “인근 점포 중 임대료를 제때에 주고 종업원 인건비라도 건지는 곳은 10∼20% 정도에 그친다”고 귀띔했다. 그렇다고 임대료가 내린 것은 아니다. 최근 급등한 건물가격에 수준에 임대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오히려 임대료를 올리려는 건물주도 있다.
이처럼 장사가 안되는데도 건물주가 임대료를 내려주지 않자 손해를 보더라도 권리금을 낮춰 매물을 내놓는 점포주들이 늘어나고 있다. 역삼동 상록회관 인근 언주로변에 위치한 건물 1층은 10평 정도가 보증금 1000만∼2000만원에 월세 100만∼150만원이 평균 임대료이다. 임대료는 예전과 변함 없지만 6000만∼7000만원 하던 권리금이 최근 4000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역삼역 인근에 위치한 대림공인 관계자는 “창업하겠다는 사람들이 없어 점포 임대료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며 “경기가 위축돼 중개업소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테헤란로 이면도로는 사무실 밀집지역이기 때문에 주5일 근무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게다가 경기변동에 민감한 회사원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어 매출이 다른 곳보다 큰폭으로 줄었다.
역삼동 특허청 인근 제일공인 서현구 사장은 “역삼1동에 총 2억3000만원을 투자한 음식점 사장이 최근 장사가 너무 안되자 8000만원만 받으면 점포를 넘기겠다고 할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간혹 점포를 구하러 왔던 사람들도 내린 가격에도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할 것 같다고 판단하는지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강남권 최고의 상권인 강남역 인근도 사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경기위축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곳이 많지만 올 초보다 평균 30% 정도는 매출이 줄었다는 게 현지 점포주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현재 강남역세권 점포는 매물이 나오지도 않고 찾는 사람도 없다. 이곳은 급등하던 권리금이 꼭짓점에 다다라 하락할 일만 남았다고 현지 중개업소는 전했다. 강남역 씨티극장 뒤편 이면도로변에 위치가 좋은 건물의 1층 상가는 40평형을 기준으로 3억∼5억원 정도의 권리금이 형성돼 있다.
이 지역 강남부동산 이동학 사장은 “인기지역인 강남역 인근도 장사가 안 돼 힘이 드는데 다른 곳은 이보다 더 할 것이 뻔해 창업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점포를 찾는 사람들도 없어 하루에 한두 사람 정도 상담을 하는데 그친다”고 말했다.
◇동대문권= 아파트시장과 마찬가지로 상가 시장도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최근엔 어려움이 훨씬 더하다.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상가 권리금은 바닥을 치고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장사가 안되는 5∼6월 하절기를 맞으면서 불경기가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다.
높은 권리금을 주고 점포를 얻어 높은 월세를 내고 있던 임차인들이 매물을 내놓으면서 매물이 쌓이고 있다. 장안동 인근에 있는 월드공인 등 중개업소에 따르면 “권리금이 무려 40∼50%가량 빠졌지만 거래는 여전히 안된다”고 밝혔다.
경동시장과 약령시장 주변도 매물은 많이 나오지만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신설동 굿모닝부동산 관계자는 “장사가 안된다는 분위기 때문에 신설동 이면도로 주변은 공실이 많고 전체적으로 상권이 축소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때문에 내놓는 권리금 단가보다 30%가량 싸게 거래된다고 덧붙였다.
제기동 인근 대교공인 관계자는 거래가 되지 않고 찾는 사람도 없다며 제기동의 경우 미도파 제기점이 문을 닫은 여파로 이 지역은 인구집적효과가 떨어진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제기동 도로변 낡은 건물에는 입주한 상가가 많은 것도 매물을 늘리는 요인이다. 그는 이곳 상가의 매매가는 평당 400만∼1000만원으로 다양하나 최근 거래가 전혀 되지 않아 매물만 쌓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암골 B공인 관계자도 “거래가 되지 않으니 시세자체가 의미가 없다”며 “최근 몇달간 상가임대차 계약이 한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영등포권=지난해 가을 정점을 찍은 이후 영등포 상권은 지속적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 일대 상가 매출이 평균 20∼30%나 떨어졌고 권리금도 50% 가까이 내렸다. 현지 중개업계에 따르면 권리금 없이 매물로 나온 점포도 수백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높은 권리금을 주고 임대를 얻었던 많은 상인들은 권리금 손실로 가게를 내놓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영등포동 50∼70평짜리 상가는 지난해 가을 권리금이 최고 8억원까지 형성됐지만 지금은 3억∼5억원에 머무는 등 권리금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상가 매매가도 뚝 떨어졌다. 불과 1∼2년 전 대지 80평에 건평 280평짜리 6층 건물의 매매가는 20억∼30억원을 호가했지만 현재 이 건물은 매매가 15억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영등포역 앞 지하상가의 경우 10평짜리가 최근 2억원에 팔렸다. 지하상가는 지난해 11월 6억5000만원에 거래되던 노른자위 상권이었다.
영등포역 앞 상가 밀집지역에서 만난 대부분의 점포 주인들은 “올해들어 매출이 뚝 떨어져 경기 불황을 실감하고 있다”며 “하지만 임대가는 그대로여서 매월 인건비를 충당하기도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점포 주인들은 매출하락에 따른 권리금 폭락으로 쉽사리 점포를 내놓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형성된 권리금보다 2배 이상 주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영등포3가 GM컨설팅 김창승 이사는 “주택시장에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투자는 머뭇거리고 있다”고 말했다.
상가 임대의 경우 권리금은 크게 떨어졌지만 임대가는 여전히 보합세다. 고정수익을 기대하는 건물주들이 월 임대료를 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영등포3가의 한 중개업소에는 상가임대와 사무실 임대 매물이 40여개나 쌓여 있었다. 상가의 경우 위치와 업종, 상가 규모에 따라 임대가는 천차만별이었다.
영등포동 노른자위에 위치한 1층 50평짜리 상가의 임대 조건은 보증금 5000만원에 월 500만원, 권리금은 1억5000만원선이다. 일반음식점이 가능한 1층의 25평짜리 점포는 보증금 5000만원에 월 350만원, 권리금 3000만원에 나와있다.
영일공인 김주석 대표는 “정부 정책의 혼선과 경기침체로 상가 시장이 바닥을 모르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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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fnnews.com 박현주 박승덕 전용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