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 소비자 무시한 ‘반쪽 모터쇼’ / 남충우 자동차공업협회 상근부회장

이연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6.16 09:40

수정 2014.11.07 16:51


지난 5월 수입차전시회가 열리고 있을 무렵, 어느 대학생으로부터 항의성 e메일을 받았다. “외국 유명모터쇼처럼 한 장소에서 국산차와 외산차를 함께 볼 수 있도록 해야지 서울모터쇼는 뭐고 수입차모터쇼는 뭡니까. ‘수입자동차모터쇼’라는 용어도 있습니까. 관계자들 정말 정신 좀 차리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수입자동차모터쇼’라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개최지 국가나 지역명을 따서 모터쇼라고 표현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

세계 최초의 모터쇼는 프랑크푸르트모터쇼로 1897년 독일에서 개최되었으며, 그 뒤를 이어 파리모터쇼, 디트로이트모터쇼, 버밍엄모터쇼가 차례로 개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세계 유명 모터쇼는 모두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며 자국에서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시점에 개최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5년 개최된 ‘서울모터쇼’가 모터쇼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세계자동차공업연합회(OICA)로부터 공인을 받은 서울모터쇼는 ’95년 제1회 대회와 ’97년 제 2회 대회까지만 하더라도 국산차와 외산차가 모두 참가하여 매회 70여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한 성공적인 모터쇼로 평가받았으며 우리나라 전시 사상 최대의 관람객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모터쇼가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모터쇼가 국내에서 처음 개최된다는 기대심리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국산차와 외산차가 모두 참가함에 따라 비교전시가 가능하여 관람객 욕구를 최대한 만족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서울모터쇼는 국산차 중심의 모터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외산차를 수입·판매하는 업체들의 모임인 수입차협회가 국제적인 관례에도 없는 모터쇼의 공동주최 및 수익금의 절반을 요구해 왔으며, 이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자 서울모터쇼에 계속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소비자와 참가업체들의 불만가중은 물론이고 여론의 비난 또한 높았던 게 사실이다.

‘모터쇼’는 기본적으로 주최국 업체들이 중심이 되어 그 나라 소비자들에게 미래의 자동차 트렌드를 보여주는 축제의 장이고 수입차업체들은 그 잔치에 축하와 성원을 보내기 위해 자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참여하는 게 일반적인 국제관례다.

프랑크푸르트, 디트로이트, 파리, 도쿄모터쇼를 포함한 세계 유수 모터쇼를 보더라도 수입차업체들은 자사차량 홍보 및 판촉 차원에서 참가만 할뿐 우리나라 수입차업계처럼 수익금을 별도로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 또한 개최국 자동차 생산자단체가 주최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만약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들이 외국업체들과 담합하여 프랑크푸르트모터쇼나 디트로이트모터쇼 주최측에 공동주최 및 수익금 배분을 요구한다면 그들은 과연 수용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수익금 배분은커녕 필요한 전시면적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실례로 2000년에 개최된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우리업체들은 1층도 아닌 지하 전시장에 배정되어 관람객들이 쉽게 찾아올 수가 없었으며, 2001년에 개최된 도쿄모터쇼에서도 자국업체인 도요타의 경우 890평의 전시면적을 사용한데 비해 현대자동차는 단 60평만이 배정되었다. 이와같이 나라마다 자국메이커에 지나칠 정도로 우대정책을 펴고 있으나 그 나라에서 한대라도 더 팔기 위한 수입차업계로선 이를 감수하고 참가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그 나라에서 개최하는 국제모터쇼에 수입차메이커가 참가하지 않을 경우 국민들은 불참한 메이커의 제품을 철저히 외면해 버린다. 즉, 국제모터쇼에 출품조차 하지 못하는 자동차는 그 나라에서 판매할 자격도 없다는 것이 시장경제를 고수하고 있는 그들의 자존심인 것이다.

한국수입차 시장의 파이가 최근 수년간 많이 커졌고 한국의 소비자들도 이제는 무서우리 만큼 달라지고 있다.
한국내 수입차업계가 시장경제를 무시하고 지나친 행위를 계속 한다면 한국소비자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된다. 자동차를 팔려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정보와 미래 비전을 제시해 줄 의무가 있고 여기에 모터쇼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소(小)를 위해 대(大)를 희생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기형적 모터쇼’ 굴레에서 하루빨리 탈피해 한국을 대표하는 모터쇼가 세계자동차 생산 5위국에 걸맞은 온 국민 축제의 장으로 승화되길 기대해 본다.

/남충우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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