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中企 거인-광주요 조태권 회장] ‘도공의 얼’ 빚는 장인

김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6.17 09:40

수정 2014.11.07 16:48


1963년 경기도 이천의 한 가마터에서 시작한 광주요가 40여년 동안 전통자기의 명맥을 굳게 이어가고 있다.

이천은 예로부터 궁중에서 쓰일 도자기에서 임금이 신하에게 내릴 선물 하나에 이르기까지 관가나 사대부 집안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도자기(관요·官窯)들이 빚어 지던 곳. 따라서 도자기 문화를 이어받기 위해 이곳에 뿌리를 내린 광주요의 도자기 속에는 장인정신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마치 고려청자, 조선백자가 첨단시대에 재현된 듯한 느낌이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지만 광주요를 얘기할 때 창시자 조소수 전 회장의 일화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젊었을 때 일본에 건너간 조 전회장은 자수성가로 재력을 확보하게된다. 그 힘으로 그는 일본 황족의 후예인 한 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는 어느날 황족 친구 저택으로 초대된다. 전통 일본식 저택도 처음이지만 차실로 안내되어 차를 대접 받았을 때 그는 당혹감과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다완(茶碗)이라는 이름의 찻잔에 차 대접을 받지만 그것은 조선땅 시골에서 본 영락없는 개 밥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대단한 보물인 양 두손으로 받들어 올리는 친구의 행동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황족 친구는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네가 들고 있는 그 다완은 일본의 국보이자 우리집안의 가보다. 막부시대엔 그것 하나하고 성(城) 하나를 바꾸기도 했다”고 황족은 일침했다.

황족은 이어 “이건 조선사람이 만든 거고 조선에서 갖고 온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금새 일본인들의 도자기에 대한 안목에 감탄하며 선조들의 맥을 잇지 못함을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사업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조선백자의 맥을 잇기위해서다. 그때 나이는 51세로 새로운 업태에 도전하기에는 다소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나이가 중요치 않았다. 조선백자의 맥을 잇는 일이 너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때문이다.

그는 이곳에 조선시대 어용과 관수용으로 자기를 생산하던 ‘광주분원’을 염두에 두고 ‘광주요’를 설립했다. 도자기 사업은 돈을 벌기위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전통 자기의 맥을 잇기위해서였다. 일본에서의 문화적 수치도 잊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광주요 조태권 사장은 이런 선친의 뜻을 잘 알고 있다.

1988년 선친에 이어 사장자리에 오른 그는 즉시 도자기 제조의 원료처리를 과학적으로 표준화, 실용에 옮기는데 주력했다.비색의 청자는 물론 분청사기, 백자 등 전통 자기를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

부친이 주장하는 전통자기에 생활자기의 모습을 심어주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3년 3월 전통자기와 생활자기가 멋드러지게 만나는 현재의 광주요 도자기(브랜드명 하나자기)가 개발됐다.물경 15년간의 고된 개발작업이었다.

그는 야심작 하나자기가 개발된 이후에도 날마다 도자기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에게는 도자기가 생활이자 자신의 생명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 정성탓인지 광주요의 도자기는 여타 회사의 제품과 달리 생생한 생명력이 엿보인다. 고고한 자태에다 위엄마저 서려있다.

광주요가 한때 업계 선두 자리를 넘보다가 최근 3위 자리를 고수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 전통을 강조하다보니 아무래도 상업성면에서는 밀린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전통자기에 치우치다보니 고가 소량 생산을 할 수밖에 없고, 이는 자연스레 고객층의 한정화를 가져올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는 이를 게의치 않는다. ‘전통자기와 생활자기의 조화’를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그에게는 매출순위가 그리 매력적이지만은 않다.


그는 도자기가 한국인의 삶과 문화의 특색이 가장 잘 담겨져 있는 대표적인 문화 상품이라고 믿고 있다.

“현실은 세계적으로 그 우수함을 인정 받은 이 값진 문화 유산이 우리 나라 대표 문화 상품으로 개발되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는게 안타깝습니다.
우리 문화를 우리들만이 만들수 있는 그릇에 담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 dikim@fnnews.com 김두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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