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복지와 부의 분배 등을 강조해온 독일의 사회민주당이 크게 변신하고 있다. 노동자 우선 정책과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독일경제가 성장의 동력을 잃고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인식한 때문이다.
그동안 독일은 사민당의 친노동자 정책으로 기업의 투자도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고 ‘해고보호법’ 때문에 노동자에 대한 해고가 불가능해 기업의 구조조정이 어려웠다. 이에 독일의 기업들은 독일내 투자를 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 투자하면서 제조업의 공동화가 심화됐다. 그 결과 독일경제는 활력을 잃고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에 빠지는 위험한 상태에 놓이고 실업자는 증가하고 있다.
과도한 복지정책 후유증으로 재정적자도 심화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재정적자 비중이 3.7%로 유로존 기준치 3%를 넘고 있다. 이에 사민당 정부는 노동자와 빈곤층을 위한 복지사회정책에서 기업의 부담을 낮추고 경쟁력을 높이는 시장자유정책으로 정책의 기본틀을 전환할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독일 사민당 친노조정책 포기
최근 독일 사민당이 채택한 경제개혁안은 근로자 해고규정 완화와 실업수당 삭감 등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부담의 최소화가 그 핵심이다. 그동안 기업구조조정을 어렵게 해온 해고보호법을 전면 개정하여 근로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미국식 고용제도를 도입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노동자의 지지를 받아 집권한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는 독일 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그동안 실시해온 친노조적 정책을 포기하고 친기업적 정책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97년 집권한 영국 노동당 당수 토니 블레어는 이미 일찍이 친기업정책 방향으로 전환했다. 당시 블레어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게 하고 근로자 복지를 위해 정부지출을 늘리는 등 ‘제3의 길’ 이념을 주창했다. 제3의 길은 사실상 노동자 권리와 복지지출 확대를 주장하는 독일의 사민당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블레어는 집권 후에 기업이 부담하는 세금을 낮추는 등 오히려 친기업적 정책을 더 많이 실행했다. 영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를 유도해야 되고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친기업적 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 브라질 대통령으로 당선된 룰라 다 실바의 대변신은 더욱 놀랍다. 70년대 브라질의 금속노조 파업 주도 등의 화려한 노동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집권 후 친노조정책을 포기하는 과감한 개혁을 하고 있다.
자신의 지지기반인 노조를 설득하여 노조개혁을 이루지 않으면 높은 노동비용 때문에 브라질 경제 자체가 몰락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브라질 재정적자의 주요 요인이 돼온 사회보장제도도 대수술을 단행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친노동정책을 포기하는 과감한 개혁으로 브라질 경제는 활력을 얻고 있다. 외국투자가들은 룰라가 현실에 바탕을 둔 믿음 있는 지도자로 평가하고 있으며 브라질의 대외신인도가 높아지고 있다.
노동자를 지지기반으로 집권한 독일의 슈뢰더나 브라질 룰라의 대변신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 분명해졌다. 첫째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되지 못하면 국가경제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해고를 어렵게 하는 등 친노동자 정책은 기업의 부담을 높이고 구조조정을 불가능하게 하여 결국은 국가경제를 몰락하게 만든다. 더구나 노조가 기업경영까지 간섭할 경우 산업공동화를 촉진시켜 근로자의 일자리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효율성 우선하는 정책 절실
둘째는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달성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분배와 성장의 동시달성 문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세계경제의 통합화가 가속화되고 국가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번 경쟁에 뒤처지면 영원히 기회를 상실하는 위험이 커지고 있다. 분배와 형평성을 강조하는 경제시스템을 가진 국가는 성장과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경제시스템을 가진 국가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동북아 경제중심으로 부상하기 위해서 우리가 채택해야 할 경제시스템은 무엇인지 자명해졌다. 성장과 효율성을 더 중시하는 경제시스템, 그리고 기업의 경쟁력을 더 강화시킬 수 있는 제도다. 친노동정책은 당장은 근로자에게 득이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국가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외국인 투자가나 기업들의 투자를 저해하게 만들어 경제를 몰락하게 만든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정책이 결국은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권익을 높여주는 친노동정책인 것이다.
/유석형 논설실장·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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