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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서평] ‘바람과 구름과 비’ 독자 한마디


텔레비전 사극을 볼때마다 몇가지 생각을 해본다. 유동근이 나오던 ‘용의 눈물’을 보면서 ‘저럴땐 왜 저런 말도 안되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을까. 나같으면 저러지 않았을텐데… 아이고!’ 안타깝네하면서 역사극의 재미에 빠져든다. 내가 그때 태어났더라면 뭘하고 있었을까. 포졸일까. 장군일까. 아니야 그 당시 광대였을지도몰라!

또 ‘여인천하’를 보면서 강수연이가 저때 태어났으면 정말 저랬을지도 몰라라거나 엉뚱하게도 ‘왕은 추우나 더우나 저 옷밖에 없을까. 여름엔 하복이 있었을텐데…. 경복궁에가면 그 당시 마이크도 없었을터인데 임금님의 목소리가 어떻게 저기 끝에있는 신하에게 전달됐을까’ 궁금해하기도 한다. ‘바람과 구름과 비’를 읽으면서도 조흥은행본점 앞을 지나면서 ‘저기가 광통교 부근일텐데…. 최천중이가 돈이 많았으니 그 자리가 조흥은행본점이 되지않았을까. 아 연치성이처럼 나도 무술한가락 해야 하는데 이게뭐람! 배만나오고…. 무술은 안되니까 박종태처럼 이빨이라도 잘까야 할텐데!’ ‘난 원래 불평불만이 많은 놈이니 어디 산속의 산적이 되어있지나 않을까’ 하기도 하면서 ‘바람과 구름과 비’를 읽어나간다. 방송이다 뭐다 나름대로 바쁘다면 바쁜몸(?)이 열권짜리나 되는 대하소설을 읽게 된 이유는 어디 신문인가에 연재될적에 처음부터 읽은것도 아니고 띄엄 띄엄읽다가 나파륜이란 술을 마시는 장면을 읽게 된 것이 기억에서 안잊혀지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파륜!!! (나폴레옹장군의 이름을따서 지었다는 술이름이다. 나폴레옹꼬냑의 한자이름인거다.) 왜그랬을까. 무진장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조선조시대의 두루마기 입은 선비가 나폴레옹꼬냑을 마셨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말이다. 도서출판 들녘에서 열권짜리가 나온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1권을 사서 읽고 있는중에 어떻게 인연이되어 라디오 광고목소리를 내게 되었고 마침내 오늘 2003년 6월13일의 금요일에 다 읽었다.

누구한테 들어서 여러번 써먹은 ‘에미모자는 배자를 닮았는데 사랑이 넘쳐서 비뚤어져 있다’도 그 출처를 알고보니 8권에 민하가 원세개 앞에서 읊은 것이었다. 숱하게 나오는 한시의 뜻을 다 풀이 하지 않아도 넘어가는 이병주 선생의 구라술에 넋을 잃었다. 다시 한번 나는 ‘이 소설속의 누구였을까’를 생각해본다.

사족을 달면,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나의 라디오 광고문안처럼 돗자리 한 장 사들고 창경궁에 가서 읽다가 잠이 들기도 하였고, 경복궁에선 잠자다가 경비에게 혼나기도 했다.

/전유성 개그맨
◇ 평소에 대하소설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오래 전에 타개하신 작가 이병주님의 작품 ‘바람과 구름과 비’를 보는 순간 호기심이 당겼다. 그 호기심은 권을 거듭할수록 더욱 짙어만 갔다. 구한말의 역사를 흔히들 풍운의 역사로 일컫는다. 민초들의 응어리진 한과 열망은 그 어느때보다도 격렬했고, 비록 이 작품이 미완으로 끝나 아쉬움이 남지만, 어차피 당시의 역사는 미완의 혁명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들 세대로선 전혀 알 수 없고 느끼지 못한 풍류의 기질을 접한 것이 또 다른 재미라 할까. 그동안 읽어왔던 역사소설과는 달리 깊이가 있고 그 당시 살아갔던 수많은 이름없는 사람들을 껴안으려는 작가의 세심한 애정이 구구절절이 배어 있다. 역사소설의 진수를 만끽하고픈 사람들에게 주저없이 권한다.

/김희선 ㈜태평양 연구원
◇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굵직굵직한 대하소설을 써왔던 이병주님의 ‘바람과 구름과 비’가 신문에 연재될 당시 난 대학생이었다. 당시 그 연재소설은 학생들 사이에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그 기억을 갖고 있던 나는 ‘바람과 구름과 비’가 새롭게 단장하여 21세기에 나타났을 때, 그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느꼈다.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수많은 민초들을 대변하는 천하디 천한 관상쟁이 최천중. 그가 만약 지금 21세기를 살아간다면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그의 인간에 대한 시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까. 그렇다. 오히려 폭넓은 그의 인재관이 지금에 이르러선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고독한 영웅의 시대가 아니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해 그 힘과 열정으로 함께 살아가는 시대, ‘바람과 구름과 비’는 우리 시대를 위한 큰 소설이다.

/김종식 한국전력기술 감사실 부장
◇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권한 책, ‘바람과 구름과 비’를 받는 순간에 표지에서 끌리는 묘한 것이 있었다. 사실 그다지 독서수준이 높지 못한 나에게 그리 쉬운 책은 아니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곳곳에 나오는 한자는 솔직히 말해 버거웠지만, 문장의 전체적인 흐름은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소설과는 차원이 달랐다. 종횡무진 누비는 주인공 최천중의 이미지는 뭐랄까, 평소에 내가 추구하던 이상형이라고나 할까. 요즘 주위에서 참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 아닐까 한다.

점점 작품 속으로 빠져들던 나는 왜 남자친구가 역사소설을 즐겨 읽는지 알게 되었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지나간 역사를 배경으로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을 통해 역사를 뒤집어보는 재미에 빠져들면 결국은 중독과 다름없게 된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최윤영 성균관대학교 3학년
◇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대한제국이 한일합방이 되지 않았다면 등등의 가정은 상상만으로 남을 뿐이다. 여기에 상상이 주인공인 공간이 있다면 바로 소설이다. 내가 유독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역사에 상상의 필력으로 가정을 삽입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병주의 ‘바람과 구름과 비’는 이러한 역사소설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십분 발휘하는 소설이다.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들인 문체와 내러티브, 등장인물의 개성이 단연 돋보인다. 최천중, 황봉련 등 등장인물들의 맥박까지 드러내보이는 듯한 활기 넘치는 문체는 나를 문장 속으로 몰입케 한다. 또 열 권이나 되는 장대한 분량을 끌어가는 이병주의 스케일과 힘은 좌중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재미와 몰입, 장대함을 동시에 선사해준 이 소설을 항상 내 곁에 두고 기억하고 싶다.

/(김준규 ㈜소프트커뮤니케이션 이사
◇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책을 만난 기쁨만큼 독자에게 소중한 것이 있을까. 참 오랜만에 열독(熱讀)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시대와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비천하게 살던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더러운 세상을 바꿔보고자 기막힌 공화국을 꿈꾸는 모습은 치열함을 놓고 살아왔던 내게 새삼스러운 감격으로 밀려왔다.

“이루어질 수 있을까 없을까를 나는 생각하지 않소. 명산의 고요 속에서 초근목피를 먹고 이슬을 마시며 신선처럼 살 줄도 나는 알고 있소. 그러나 기어이 이 잡스러운 세상을 호령하며 살고 싶소”라는 속 시원하면서도 슬프게 들렸던 최천중의 사자후는 좌절과 실패의 카타르시스를 뿜어낸다. 미완(未完)의 혁명을 담은 이 미결(未決)의 소설은 나에게 아직 끝난 것은 없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 더욱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경윤주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