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입니다. 살아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없을까요.” 며칠 전에 만난 한 패션쇼핑몰 홍보 책임자가 하소연하다시피 내뱉은 말이다.
지난 90년대 중반 사그라져가는 재래시장의 불길을 다시 지피며 ‘좋은 물건 싸게 파는 신화’를 만들고 신쇼핑문화 창조에 앞장섰던 서울 동대문, 명동, 남대문 일대의 쇼핑몰들이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쇼핑몰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1층 매장 한가운데가 휑하니 비어 있는가 하면 층마다 빈 점포가 수두룩하다. 고가와 저가로 치닫는 소비 양극화가 주로 중가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패션쇼핑몰들을 강타하고 있다.
현실이 이렇지만 그냥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위기감이 패션쇼핑몰 전체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밀리오레는 지금까지 직영해 오던 G2B2 매장 가운데 한개 층을 애완견 등 동물매장으로 꾸밀 예정이다. 전체매장의 절반가량을 기존 임대제에서 등기제로 바꾸는 등의 초강수까지 들고 나왔다. 메사는 최근 용도변경까지 해가며 13층 매장을 스포츠센터로 리모델링했다. 프레야타운은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쇼핑몰을 포기하고 아웃렛 매장으로 가려 하고 있다.
패션쇼핑몰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는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건 쇼핑몰들이 매장 운영의 공동주체인 입주상인과의 굳은 신뢰를 구축하지 않으면 설령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패션쇼핑몰들은 이같은 변신이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되짚어봐야 한다. 이번 역시 상인 위에 군림하고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만을 좇아가는 운영시스템을 고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에 귀를 기울이고 반성해야 한다. 입주 상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도 쇼핑몰 관리주체에 대해 ‘부동산 임대업자’ 등으로 표현하며 적대적 감정을 수그러트리지 않는 배경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다.
패션쇼핑몰이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아웃렛 매장 등 유사 경쟁업태의 득세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틈새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보이지 않는다. 쇼핑몰을 꾸려가는 주체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며 함께 나아갈 때 찾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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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st@fnnews.com 유선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