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각료들 중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권기홍 노동부 장관도 그 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다. 교수 출신인 권장관이 현장 중심의 노동부를 맡은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례적이다.
권장관은 올초 두산중공업 파업이 한창일 때 현장에 직접 달려갔다. 나중에 정부가 노조편을 들어줬다는 지적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문제가 해결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권장관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노동부는 정부 안에서 노동자를 대변해야 하며 그것이 노동편향이라면 편향하겠다”, “농림부가 농민편을 드는 것은 시비하지 않으면서 노동부가 노동자편을 드는 것은 왜 문제삼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놨다. 권장관의 이런 말을 두고 편의적이요 궤변적 사고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랬던 권장관이 지난 18일 자동차 사장단과 만나서는 “현대차에서 파업이 일어나더라도 현장에 직접 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석달만에 원칙과 태도가 180도 바뀐 것이다.
이후 권장관은 노동계가 조흥은행 매각 반대 등을 외치며 파업수위를 높여갈 때도 해결책을 제시하며 노조를 접촉하기는커녕 언론과 인터뷰조차 거부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일관했다.
조선조 숙종∼정조시대에 채제공(蔡濟恭)이라는 문신이 있었다. 자는 백규(伯規)요 호는 번암(樊巖)인 채제공은 1758년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 격인 도승지로 임명된 뒤 영조대왕이 사도세자에게 폐위의 비망기를 내리자 죽음을 무릅쓰고 이의 철회를 주장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폐위를 끝내 말렸던 채제공을 손자 정조에게 “진실로 나의 사심 없는 신하이고 너의 충신이다”고 평했다.
동떨어진 사안 같지만 지금의 노동문제가 국가경제를 위해 목숨을 걸만큼 심각한 것이어서 채제공과 권장관의 자세가 비교된다.
권장관은 최근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노동문제와 관련, 주무장관으로서 차기 대통령과 사가(史家)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지 매우 궁금하다.
신독(愼獨·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을 삼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노조가 두려워 말을 못하는 것인지 국민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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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ilk@fnnews.com 김종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