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해외시장에서 성공신화를 이루고 있다.
지난 5월에 열린 칸국제영화제에 한국영화는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제마켓에 마련된 부스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같은 인기에 힘입어 당시 국내에서 개봉을 앞둔 영화들도 줄줄이 해외배급사와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백운학 감독의 액션영화 ‘튜브’가 일본을 비롯해 20여개국과 총 250만달러(약 30억원)의 계약을 체결하며 올해 판매된 영화 중 가장 높은 금액을 받았고, 김지운 감독의 공포영화 ‘장화, 홍련’이 100만달러, 애니메이션 ‘원더풀데이즈’도 프랑스 파테 디스트리뷰션에 한국영화 프랑스 수입최고가인 50만달러, 스페인 망가필름 17만달러에 수출됐다. 시네마서비스는 ‘가문의 영광’ ‘공공의 적’ 등 7편을 패키지로 15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CJ엔터테인먼트도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에서 100만달러의 판매고를 올렸다. 또 오는 2004년 1월 개봉예정인 강제규 감독의 블록버스터 ‘태극기를 휘날리며’도 일본과 스칸디나비아에 선수출됐다. 이외에도 올초 멜로영화 ‘클래식’이 76만달러, 한일합작영화인 ‘런투유’가 150만달러에 수출되는 성과를 거뒀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이건상 해외진흥부장은 “지난해 한국영화 수출금액 1500만달러(약 176억원)였지만 올해는 현재까지 1500만달러를 해외에 내다판 것으로 집계됐다”며 “연말까지 1800만달러는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메이크 판권 판매도 급증=최근에는 영화 뿐만 아니라 리메이크 판권과 시나리오 판권판매도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그 불씨를 지핀 영화가 바로 ‘조폭 마누라’다. 이 영화는 지난 2001년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미국 영화제작 배급업체인 미라맥스와 110만달러의 리메이크 및 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엽기적인 그녀’ ‘시월애’ ‘달마야 놀자’ ‘가문의 영광’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등이 리메이크 판권계약을 맺었다.
최근에는 지난 2월 열린 아메리칸필름마켓(AFM)에서 25만달러 협상을 벌였던 빙의현상을 소재로 한 ‘중독’이 최종계약을 체결했고, 드림웍스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장화, 홍련’의 리메이크 판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튜브엔터테인먼트 김승범 사장은 “소재가 고갈된 할리우드에서 점차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최근 한류 열풍 등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또 흥행이 검증된 리메이크 판권을 구입하게되면 막대한 시나리오 비용이 줄어들고 작가에게 지급되는 러닝개런티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리메이크 판권이 잘 팔리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왜 한국영화인가=한국영화가 잘 팔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전부터다. 지난 97년 영화수출이 신고제로 바뀌면서 절차가 가벼워졌다. 그러자 미로비전과 같은 해외판매 대행업체들이 속속 생기면서 해외수출의 물꼬를 트게됐다. 95년 20만달러에 불과했던 수출금액이 98년 65만달러, 99년 303만달러, 2000년 705만달러로 증가했으며 2001년에 비로소 1000만달러를 훌쩍 넘어 1125만달러, 2002년 1504만달러를 기록했다.
영진위는 한국영화 인기요인을 몇 가지로 분석했다. 우선 영상관련 학과가 70여개로 증가하면서 우수한 인력이 배출됐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영화계에서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살인의 추억’ 등의 감독이 신인이라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물론 이들은 한국영화의 질을 높이는데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또 문민정부 이후 영화에서 다룰 수 있는 소재에 대한 제약이 없어지면서 다양한 장르로 경쟁력을 갖추게됐다. 물론 드라마를 통한 ‘한류열풍’과 할리우드의 소재고갈도 이에 한 몫했다. 게다가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한국영화가 해외에 많이 알려졌고 이를 계기로 해외수출만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들도 생겼다.
튜브엔테테인먼트 김승범 사장은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영화처럼 제작과 배급에서 경쟁력을 갖춘 나라가 없다는 것을 한국영화의 인기요인으로 꼽았다.
◇한국영화, 아직 갈 길이 멀다=지난 1월에 유럽시청각연구소가 펴낸 96년에서 2001년까지 ‘유럽에서 비할리우드 영화배급 상황’에 따르면 아시아영화 중 한국영화 점유율은 1%에 불과하다. 반면, 애니메이션에 강세를 보이는 일본이 59%, 대만 19%, 홍콩 8%, 이란 7% 순으로 나타났다. 아직 한국영화가 개척할 수 있는 시장이 많다는 것이다.
이건상 부장은 “지금까지 한국영화의 판매는 판로가 뚫렸기 때문에 어느정도 수준까지 올라간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이후 한국영화판매 증가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지난해부터 프랑스와 공동제작 등에 관한 협력방법을 논의하고 있다”며 “이외에도 아시아 국가들에 영진위와 같은 단체를 설립토록 유도해 국제교류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pompom@fnnews.com 정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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