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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온고지신] 호암의 골프경영학

이지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6.30 09:44

수정 2014.11.07 16:20


이병철 회장은 1주일에 2∼3회 필드에 나가 공을 쳤다. 평소 자기 자랑을 안하기로 유명한 그였지만 3회에 달하는 그의 홀인원의 진기록은 주위의 지인들과 필드에 나갈 때면 꼭 한번씩은 자랑으로 삼았을 정도였다.

이회장은 도쿄를 자주 왕래하던 40대 때인 1950년대 일본 프로 골퍼의 원조로 명성이 높았던 고바리의 레슨을 시작으로 아이언을 잡았다. 기초부터 착실하게 레슨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샷은 거의 결점이 없었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회고다.

평균 타수는 82∼84타. 이회장과 자주 라운딩을 했던 상대는 고 구인회 LG그룹 회장, 이재형 국회의장, 신용남 대한골프협회 고문 등이다.

이병철은 골프매너가 나쁜 사람과는 절대 라운딩을 하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스코어를 속이거나 거짓말하는 사람,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 기타 등등. 그러한 그의 신조는 ‘골프는 매너로 시작해 매너로 끝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회장은 승부에 임해서는 매우 철저했다. 재계의 친선 골프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사업상 경쟁상대였던 고 정주영 현대회장에게 지는 것을 특히 싫어했다. 시합에서 졌을 경우 자신의 패배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다시 필드에 나갔다.

이회장은 단순히 승부에 대한 집착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던 것에 대해 스스로 용납을 못했다.

그런 그의 태도는 삼성의 경영에서도 그대로 묻어나왔다. 사업에 대해서도 잘 안되면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철저히 분석한다. 이어 해당사안에 대해 정통하고 나름대로 일가견을 가진 기자나 교수들을 식사에 초대해 대화를 나눈다. 그것도 한꺼번에 여러사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 따로 만나 연구사안에 대한 사정을 소상히 파악한다. 이를 통해 다음 사업에 임할 때는 그런 문제를 사전 제거하고 뛰어들었다.

반도체 사업이 대표적 예다.

이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기 전에 반도체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의 연구는 골프승부에서처럼 조직적이고 치밀했다. 에버랜드나 안양골프장을 만들 때도 그러했다. 특히 에버랜드를 만들 때도 세계 일류의 테마 파크를 모조리 검토해본 후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또 제일모직의 설립 후 일류와이셔츠를 만들기 위해 전세계 명품 와이셔츠를 150여장이나 구해 직접 입어본 이회장이었다.
위암으로 투병중에도 그는 암에 관한 각종 서적을 구해 직접 읽었다. 자신의 수술을 집도할 의사도 직접 결정했다.


경영, 골프 등 인생 전반에서 일류만을 지향하는 그의 ‘프로정신’은 한결같았다고 주위의 지인들은 회고하고 있다.

/ newsleader@fnnews.com 이지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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