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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미국 복권의 역사

장승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7.01 09:44

수정 2014.11.07 16:18


인간의 노름과 도박의 역사는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됐다고 한다. 실제로 BC 2300년쯤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각종 도박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는 오늘날의 카지노 도박에서 사용되는 주사위와 흡사한 부장품이 발견됐고, 성서 창세기에서는 모세가 요르단강 근처의 땅을 분배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도박을 통해 신이 자신의 운명이나 행운을 알려주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단순히 자금을 모으기 위한 수단뿐만 아니라 미래의 행운을 점치는 주술적인 의미도 갖고 있었다. 이후 중세 15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복권제도가 유럽 각국의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됐다.

지난 1727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복권제도는 현재까지 그 명맥이 유지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복권제도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유럽 각국은 전비를 마련하거나 부족한 제정을 메우고 도로나 대형 건축물의 공사비 마련을 위해 왕실이 직접 복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한 미국의 복권 역사도 유럽의 그것과 맥은 같았다. 영국의 직할 식민지였던 미국 동부 지역은 종교의 자유와 청빈한 생활을 신조로 삼았던 청교도들과 일반 영국 이주자로 구분돼 있었다. 뉴잉글랜드와 펜실베이니아주 등 청교도들이 거주했던 지역은 이들이 추구했던 신천지에서의 완벽한 청빈생활과 종교적인 엄격함으로 인해 도박은 물론, 카드의 소지나 주사위, 도박용 탁자 등의 소유 등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일체의 무도장이나 공개적인 유희 행위를 금지시켰다.

이에 비해 영국에서 이주해온 일반 이민자들은 아무런 제약없이 본국에서 수입해온 각종 도박을 즐겼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노름은 영국의 직접적인 지원으로 살아가던 식민지에 빈곤과 나태, 각종 사회악의 원인으로 등장하게 됐다. 도박이 주는 사회적인 부담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당시 식민지가 경제적으로 본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갱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히려 복권제도를 장려했다.

당시 13개주로 이뤄진 식민지에서는 각종 기금 마련 명목으로 복권이 성행했고 복권을 구입하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의무라는 공감대까지 형성됐다. 당시 발매됐던 복권 판매 대금으로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프린스턴, 다트머스 등 명문 대학들을 비롯해 50여개의 대학들이 설립됐으며, 200여개의 대형 교회와 공공 도서관들도 이때 세워졌다. 이후 지속적인 이민 인구의 유입으로 1800년대 들어서부터 수익이 좋은 대형 카지노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차츰 전문 도박꾼들이 몰리면서 사기 도박이 판을 치게 되자 시민들의 비난 여론과 이들에 대한 빈번한 폭력행사로 도박장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한편, 뉴욕주에서 지역 환경개선 목적으로 발행했던 복권발행이 담당업자가 돈을 갖고 자취를 감춰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자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면서 전국적인 복권발행 금지 법안들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서부로 향한 골드러시가 시작되자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다시 대규모 도박장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전문 사기도박을 우려한 도박의 불법화운동에 편승해 캘리포니아도 도박을 불법화하고 단속에 나섰지만, 정치가들의 비호를 받고 있는 도박꾼들과 말단 관리들의 부패로 별다른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캘리포니아주는 하우스뱅킹(카지노와 손님이 직접 벌이는 도박) 시스템을 불법화하고는 있으나, 지난 1984년 11월 주민 발의안의 통과로 주정부가 직접 복권 판매에 나서게 됐다. 판매액수의 34% 이상을 교육 예산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시작된 캘리포니아주 복권으로 1985년 이후 현재까지 약 140억달러의 공립학교 교육예산이 마련됐다.

한탕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산물인 복권은 가끔 당첨자가 없어 당첨금이 배가되면 한인타운에서는 현대판 금광을 찾으려는 주민들로 판매소마다 장사진을 이룬다. 간혹 허황된 꿈이 지나쳐 근처 라스베이거스나 인디언들이 운영하는 전문 도박장을 심심풀이로 출입하는 동포들을 보게 된다.
가벼운 스트레스 해소로 시작된 장난 수준의 도박이 횟수를 거듭하다 보면 적지 않은 돈을 잃게 되고, 잃어버린 본전을 찾으려다 남은 재산은 물론 집과 사업체마저 날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적은 액수지만 어디까지나 복권은 도박이고, 계속되는 도박에서 돈을 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미 수학적으로 증명이 된 바 있다.
화려한 도박장의 분위기에 이끌려 심심풀이로 도박을 즐기다 예상치 않은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허황된 마음을 다스려야 하겠다.

/전명재 로스엔젤레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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