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기업인의 유산과 기부문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7.01 09:44

수정 2014.11.07 16:18


지난 1월 별세한 태평양의 창업자 고 서성환 회장의 유가족들이 서회장의 유산 50억원을 ‘아름다운 재단’(이사장 박상증)에 기부했다. 재단측은 이 기부금을 고인의 뜻에 따라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 모자(母子)가정의 생활자립 지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기부금은 고인이 남긴 태평양 주식과 그 이익 배당금으로 알려졌다.

고 서성환 회장이 기부금을 태평양 안의 장학재단이나 복지재단에 주지 않고 외부의 비영리 공익재단에 제공한 것은 개인과 회사의 명예보다 공익을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기업과 기업인의 기부문화에 새로운 모범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익히 알려져 있듯 국내의 기부문화는 선진외국에 비해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 미국의 경우 개인 기부액이 전체의 70%에 이르는 반면, 우리나라는 20%에 그치고 있는 것만 봐도 기부행위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아주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재단’이 조사한 내용을 보면 국내 30대 그룹의 지난해 한 그룹당 평균 기부금은 매출액의 0.15%인 200억원에 달하고 있으나 이중 대부분이 정치자금이나 사내 근로복지 기금, 체육단체 기부금으로 제공됐고 순수 기부금은 아주 미미하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매출액 대비 기부금 비율 2위인 한 업체의 경우 80%가 사내 근로복지 기금으로 흘러들어간 일도 있다.

따라서 순수 기부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부행위에 대한 국민과 기업의 의식변화가 필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적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 기업의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 한도가 50%, 일본은 25%인 반면, 한국은 겨우 5%밖에 안되는 것도 기부문화 정착에 장애가 되고 있다.


이처럼 기부행위에 대한 인센티브제도가 미비, 기왕의 국내기업 기부행위마저 1회성으로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저소득층 모자가정을 위한 고 서성환 회장 유산의 기부행위가 순수 기부문화 정착을 한걸음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또 당국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수입의 ‘1% 나눔 운동’이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확산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당부한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