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제1고로는 지난 1973년 6월9일 이 땅에 최초의 쇳물을 토해냈다. 이어 같은해 7월3일 포스코(당시명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는 제1고로를 완전준공해 국내 최초로 일관제철소 가동에 들어가 ‘한국 철강신화’의 서막을 올렸다.
올해로 30돌을 맞이한 역사적 현장인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 1고로를 지난달 27일 방문했다.
제 1고로가 설치된 공장내부에서 아무리 눈을 씻고 둘러봐도 세월의 흔적을 찾기란 이미 어려운 일이됐다. 30년의 기간동안 진행된 설비합리화로 공장내부가 깨끗해 마치 어제 들여놓은 설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만 공장 천장에 ‘전통의 고로, 정상의 조업’이라고 쓰여진 녹스 간판만이 이곳이 ‘포스코 쇳물생산의 1번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선부에서 조업을 지휘하고 있는 유진하 조업지원팀장(55)은 올해로 근속 30년을 맞이하는 99명의 직원중 한명. 1고로의 첫 입화를 위해 성화를 봉송하기도 한 그는 제1고로의 ‘30년 고로지기’이자 ‘산증인’인 셈이다.
그는 고로를 가리키며 “참 신기하지요. 마치 이놈이 저랑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니까요. 30년의 세월동안 이놈이 제기능을 못하고 애를 먹일때는 나역시 몸 한구석이 아픈 듯 잠을 설칠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라며 지난 세월을 술회했다.
그가 지난 포항종합제철에 첫발을 들인 73년 2월1일 당시에는 지난 58년 자유당 정부시절부터 추진됐던 제철소 건설이 번번이 무산된후 우여곡절 끝에 대일청구권 자금을 동원해 시작된 제1기 설비 건설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마침내 첫 출선일인 6월9일이 다가왔다.
유팀장과 마찬가지로 올해로 근속 30주년을 맞이한 이상구 제1열연 기술주임(55)은 “당초 6시30분쯤으로 예상됐던 첫 출선이 1시간 가량 지연되면서 고로 곁에서 지켜보던 이들의 침삼키는 소리가 공장내에서 울려퍼졌을 정도였다”며 당시의 긴장감을 묘사했다.
“오랜 침묵끝에 붉은 쇳물이 터져나오자 박태준 명예회장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목이터져라 일제히 ‘만세’을 외치기 시작했다”며 그날을 회고하는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포스코는 일관제철소 설비 가동 1년만에 당시 투입된 외자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242억원의 흑자를 실현했다. 또 지금까지 단 한차례의 적자도 없이 흑자 전통을 지켜왔으며 현재 설비초기 대비 자산규모는 125배, 매출액과 순이익은 각각 287배, 239배로 성장했다.
제1고로를 나서는 길목에서 만난 이원표 제철소장은 “일본에 착취당한 위로금으로 받은 돈으로 세운 회사이기때문에 실패하면 ‘민족의 반역자’가 될 수 뿐이 없다는 절박감이 오늘날 포스코를 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발길을 옮겨 포스코가 7.3준공 30년을 기념해 지난해 착공해 오는 3일 개관을 앞두고 있는 포스코 역사관을 향했다. 지상 3층 규모에 연면적 1100여평, 전시면적 600평의 역사관은 포스코의 성공역사와 정신, 기업문화와, 비전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철의 중요성을 홍보하기 위해 지어졌다.
온통 철과 스테인리스 소재로 만들어진 건물 내부장식에서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포스코의 광고카피가 다시금 피부에 와 닿는다. 입구에는 지난 1978년 4월1일 고 박정희 대통령이 포스코의 건립을 기념해 직접 헌사한 ‘철강(鐵鋼)은 국력(國力)’이라는 휘호가 큼지막하게 걸려있다.
창업이전 과정을 소개하는 ‘창업전사’홀에서부터 현재 포스코의 기술과 비젼을 소개하는 ‘대역사 완성이후’홀 까지에는 국내 최초의 용광로에 불을 지핀 화입봉, 초기제복 등 총 600여점의 사료가 전시돼 있어 가히 ‘철강박물관’이 일컬을만 했다.
이원표 소장은 “3, 4기 설비를 준공할 때 직원 모두가 추석휴가 반납 캠페인을 벌이며 공기 단축에 나섰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30돌을 맞이한 포스코는 더욱 성숙된 국민기업으로서의 소임을 달성키 위해 혼신의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 newsleader@fnnews.com 이지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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