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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온고지신] 쌀집 주인딸이 본 ‘청년 정주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7.13 09:48

수정 2014.11.07 15:54


“다른 일꾼과는 사뭇 달랐어요. 밤이 되면 항상 책을 붙들고 있었지요.”

정주영 회장이 청년시절 가출해 서울에서 처음 쌀배달꾼으로 일을 하게 됐던 서울 중구 인현동의 쌀가게 복흥상회 주인 딸 이문순여사(87)는 ‘청년 정주영’에 대해 이렇게 술회했다.

현재 뉴욕에서 한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지역인 플러싱의 한 노인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이여사는 기자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젊은 시절, 정회장의 모습을 회고했다.

당시 여유 있는 쌀집 주인의 딸로서 이문순 학생은 경기여고를 나와 경성사범대학을 다니고 있어 5∼6명의 쌀집 배달꾼 중의 한명이었던 정주영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이여사는 그러나 자신의 어머니(94년 작고)가 청년 정주영의 실성과 독서열에 대해 항상 감탄을 하고 있었고 정주영을 끔찍이 위해 주었다고 말했다. 이문순씨도 어머니의 그러한 평가 때문에 정주영에 대해서는 다른 일꾼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됐었다고 회고했다.



복흥상회는 이여사의 아버지가 1928년 갑자기 사망한 이후 어머니가 큰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경영하고 있었다. 이여사는 당시 정주영이 쌀가마니도 가볍게 들 정도로 매우 힘이 셌고 저녁 때가 되면 다른 일꾼들은 장기나 두고 담배를 피우고 노는데 비해 정주영은 항상 책을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여사는 자신은 당시 그가 어떤 책을 보고 있었는지는 잘 몰랐으나 어머니를 통해 그가 ‘대지, 흙, 상록수’ 등을 봤으며 장차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또 청년 정주영이 워낙 열심히 일하고 신뢰심을 주었기 때문에 이여사의 큰아버지는 쌀배달꾼으로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장부를 맡길 정도가 됐었다고 이여사는 전했다.


이후 정주영과 이여사는 각기 다른 인생길을 걷다가 74년 이여사가 딸의 초청으로 미국 영주권을 얻어 뉴욕에서 살 때 맨해튼에서 열린 한 한국 관련 행사장에서 우연히 서로 만나는 ‘인연’을 갖기도 했다.

정회장은 지난 92년 대통령 선거운동을 할 때 한 대중모임에서 이여사를 “옛날 내가 일했던 쌀집 주인의 딸”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이여사는 그 자리에서 “큰 포부가 있었고 언젠가 큰 일을 하게 될 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표현을 했다며 당시 상황을 술회하기도 했다.

/ pch7850@fnnews.com 박찬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