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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온고지신] 한화, 도약과 약진의 시대 연 김승연회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7.21 09:50

수정 2014.11.07 15:40


81년 8월1일. 김승연 회장은 창업주 현암 김종희 회장의 별세로 경영대권을 승계한다.

그 당시 한국화약그룹(한화그룹 옛 사명)의 계열사는 15개사, 총매출액은 1조600억원이었다. 그 후 지난 91년 그룹 계열사는 26개사, 총매출액은 3조3000억원(90년 기준)으로 사세는 급격히 확장된다.

김회장이 일선경영에 나선 뒤 10년 만에 한국화약그룹은 매출액 3배 이상의 규모로 성장한 것. 한국화약그룹의 도약적인 발전에 재계는 긴장했다. 그리고 김회장의 경영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단순한 수성에 그치지 않고 재창업을 통해 한국화약그룹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취임 당시 임직원과의 약속을 지킨 김회장은 이 때부터 한국화약그룹의 미래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종합그룹 기틀 다진 한국화약그룹=김승연 회장은 선친 김종희 회장의 타계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수성이 아닌 제2의 창업’을 선언한 김회장은 한양화학을 인수하고 경인에너지의 합작사인 미국 유니언오일사의 지분을 인수하는등 10년간 10여개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급기야 90년대 초 한국화약그룹을 재계서열 11위에서 8위로 끌어올렸다.

특히 82년 한양화학 인수 때 그룹 전임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수 결단을 내려 그룹 주력기업으로 키워낸 것이 김회장의 경영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는 이어 83년 경인에너지의 미국 유니언온오일측 지분을 모두 인수, 그룹 위상을 재계 8위로 끌어올렸다. 85년에는 한국국토개발(옛 명성)과 한양유통을 잇따라 인수하는 등 사업영역을 크게 넓혔다.

또 85년에 프로야구 제7구단인 빙그레 이글스를 창단한데 이어 한국국토개발·한양유통·㈜산다를 인수했고 그뒤에도 한국정밀·한국자동차부품·한양소재 등을 설립, 서울역 민자역사 운영, 한국전자통신 편입 등을 통해 사세신장을 거듭해왔다.

김회장은 이 기간에 그룹의 트로이카라는 평을 받았던 한국화약과 경인에너지·한양화학에 집중 투자, 세계적인 석유화학그룹으로 키워나간다.

김회장은 이를 발판으로 화약재벌인 한국화약그룹을 석유화학·유통·레저·기계·금융업 등을 거느린 거대 기업으로 발전하는 결정적 기틀을 마련한다.

◇‘우려반 기대반’ 속에 출발한 김승연호=80년대 재벌총수의 승계 경험은 일천한 시기였다. 이 때 김회장이 취임했다. 재계가 김회장을 바라본 시각도 양극을 달렸다. 무엇보다 약관 29세의 젊은 회장이 선대가 일구어 놓은 사업기반을 잘 닦아 제2의 성장을 견인해 나갈수 있을 것인가에 쏠려 있었다.

그는 67년 경기고 2학년을 마치고 미국 유학에 올라 미국 캘리포니아 멘로(MENLO)대학교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시카고 뎁폴(DEPAUL)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수재다.

김회장은 이어 77년 이리(현 익산)역 폭발사고를 계기로 귀국과 함께 선친인 현암을 보좌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태평양건설 해외수주담당이사로 재직할 당시 김회장은 해외공사를 따내는 등 능력을 발휘했다. 현암이 타계하기 4년 전부터 그룹 관리본부장 및 계열사 경영을 맡아 착실하게 경영수업을 쌓아온 것이다.

하지만 재계는 그가 ‘그룹 경영을 책임지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다’는 점을 들어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다. 김회장은 ‘도전과 패기’의 정신으로 이를 극복하기 시작한다. ‘수성과 창업’이라는 두 축을 통해 그룹내 사업다각화를 착실히 안착시켜 나간다.

“선대 회장의 유업을 받들어 성실히 업무를 수행할 것이며, 전 임직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서로 협조하는 가운데 발전하는 한국화약을 만들자.”

개혁적인 사고의 소유자인 김회장은 취임초부터 성장드라이브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한국화약그룹의 제2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공식적인 행사를 일절 갖지 않았다. 단 취임사를 통해 한국화약그룹의 나아갈 방향만 제시했다. 그 당시 김회장의 이런 행보는 파격이었고 재계엔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김회장은 특히 이 때부터 개인보다는 기업, 기업보다는 국가에 우선순위를 두는 기업의 공개념을 강조했다. 이어 노사간 협조를 통한 생산성의 향상, 연구기술력의 개발, 종업원의 후생 복지 향상을 경영 방침의 근간으로 삼는다. 이 때부터 ‘의리의 경영 한화인’이란 한화식 경영문화가 정착된다.

◇김승연 회장의 리더십은 ‘신용과 의리’=김회장은 신용과 의리를 최고 덕목으로 삼고 있는 인물. 그는 지난 82년 서울프라자호텔에서 리처드 워커 전 주한미국 대사의 환갑잔치를 열어 주었다.

이는 생전에 워커 대사와 친형제처럼 가까웠던 선친의 약속을 아들로서 대를 이어 지킨 것. 게다가 김회장은 워커 대사에게 당시 팔순 잔치도 한국에서 열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지난 2002년 워커 대사의 팔순잔치를 성대히 치러줬다. 20년 전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유명한 일화다.

김회장이 항상 주장하는 경영철학은 ‘애벌레론.’ 애벌레는 자기 껍데기를 몇 번이고 벗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나비가 되듯, 기업도 혁신하고 또 혁신해야 초일류 기업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의 ‘애벌레론’은 취임초기부터 시작된다. 김회장은 취임 첫 일성은 ‘의식전환’이었다. 이는 그룹내에 고질화돼 있는 문제점을 과감히 노출시키기 위해서다.


특히 그룹 각 사의 공장 및 건설현장을 일제히 순시, 현장의 문제를 직접 확인하고 현장 근로자들을 격려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때 합작기업의 운영에 있어 그동안 봉합해온 문제점을 과감히 수술대에 올여놓는 과단성을 보인다.
이 모두가 경영의 안정된 토대를 구축하여 성장의 전환점으로 삼기 위한 경영전략에 의한 것이다.

/ sejkim@fnnews.com 김승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