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 청년실업과 사회문화

이연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0.06 10:11

수정 2014.11.07 13:27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시카고대 게리 베커 교수는 노동조합이 강성한 나라일수록 실업률이 높다는 실증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 중 하나인 듯싶다. 노조가 기득권을 강화하려고 할수록 기존 근로자의 고용은 안정되지만, 고용의 경제적 비용이 상승한 기업은 신규채용을 꺼리게 되고, 이에 따라 특히 청년실업자가 증가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이 최근 높은 이유는 강성노조외 몇가지가 더 있는 듯하다. 중국경제의 성장과 정보통신혁명으로, 전자가 육체노동산업의 붕괴를 가져왔다면 후자는 정신노동산업의 위축을 유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육체와 정신 중 기업이 유상으로 구입할 만한 부분이 적어도 국내에서 대폭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한국의 10분의 1인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중국경제의 확대는 국제경쟁력을 상실한 한국 제조업을 공동화시키는 한편, 기업으로 하여금 산업기반의 중국 이전을 검토하게 하고 있다. 마치 과거 산업혁명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기계로 대체하여 실업자를 양산한 것처럼 오늘날 중국인의 저렴한 육체노동은 한국 제조업체의 육체노동자를 몰아내고 있다.

한편,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발전은 자료와 정보를 수집, 정리, 분석, 보관, 운반하는 낮은 단계의 정신노동에 대한 수요를 소멸시키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위성항법장치(GPS) 등이 정신노동자의 직능을 대체하면서 관련기업의 노동수요는 감소하게 되었다. 정보기술(IT)의 끊임없는 발전은 이런 추세를 앞으로 더욱 심화해 고도의 정신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젊은이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취약한 가운데 앞으로 1인당 부담은 증가하는 한편, 혜택은 감소할 전망이다. 또한 과거 취업 이후 정년까지 보장해 주던 기업은 경영안정과 영속성이 사라진 ‘사오정’시대를 맞고 있다. 게다가 개인의 전통적 보험역할을 담당하던 대가족제도도 찾기 어렵다. 모든 사회적 보호막이 약화되고 취업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런 시대를 청년에게 물려준 기성세대는 민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학입학을 향한 청년들의 꿈과 학부모의 열정은 별로 식지 않고 있다. 일류대학 졸업장도 취업과 성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 빠른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서울 강남의 아파트값이 쉬지 않고 상승운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바로 대학입학 가능성 때문이라고 한다. 강남 일부에서만 폭등하고 있는 아파트값은 그외 지역의 사람들과 앞으로 아파트가 필요한 사람들로부터 더욱 멀어져가고 있다.

대학입학과 아파트에 대한 태도는 집단주의적 국민성(Herd Behavior)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식에게 남다른 교육을 시키겠다는 의식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이 정도로 성장시킨 원동력이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남을 의식하는 의타성과 종속성이 있을 뿐 구미 선진국 국민들에게 흔한 독립성이나 자주성은 없다. 선진국에서 대학은 온 가족의 꿈이 아니고, 아파트가 단독주택이나 빌라에 비해 선호되지 않는다. 개성과 자기세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인구가 서울 근처에 밀집된 나라도 없다.

이제 이런 획일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성을 추구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국제화, 정보화시대에 우리가 갈 길이다. 대학과 대기업을 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고, 아파트의 편리성처럼 단독주택의 개성도 가치가 있다는 점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판단기준과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고방식, 남과의 비교를 통한 자아실현 등은 성공으로 가는 여러 개의 열쇠를 찾거나 국민의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과거보다 못한 대우, 연소자들의 명령지시, 연장자 고용 등에 대한 노동시장의 거부감이 축소된다면 노조의 강성도도 축소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다양성은 평등성에, 평등성은 신뢰성에, 신뢰성은 투명성에 각각 그 토대를 두고 있다.
다양성은 문화로서 이를 구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투명성은 사회제도로 보다 용이하게 확보할 수 있다.

/정홍주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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