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 5년] <5> 국민은행- 초대형은행의 출범, 슈퍼뱅크 탄생을 위한 산고

이영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0.06 10:11

수정 2014.11.07 13:27


“주택은행은 당장 (국민·택)합병추진위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2001년 4월11일 오전 한국은행 기자실. 6명의 합추위원중 1명인 김유환 당시 국민은행 상무(현 국민데이타시스템 사장)가 목소리를 높였다. 합추위가 합병 권고안을 기습 발표하면서 이를 정면 거부한 주택은행을 집중 성토하고 권고안을 받아 들일 것을 강력 요청했다.

기자회견이 있은지 10여 시간 뒤인 오후 8시30분. 국민?^주택은행간 합병본계약 협상이 전격 타결된다. 다음 날은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의 청와대 보고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2001년 4월23일 오전 10시30분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 합병 본계약 체결이 예정돼 있었지만 김상훈 행장, 김정태 행장, 김병주 합추위원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노조가 단상을 점거한데다 주택은행이 이사회를 개최, 합추위안의 수정을 검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본계약은 무기한 연기됐다. 합병가도에 먹구름이 다시 깔리는 듯했다.

하지만 우연일까? 이날 낮 청와대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금융기관장 연찬회가 열렸고, 두 행장은 나란히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 앉는 영광을 가졌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6시30분 전경련 회관. 두 행장은 비밀리에 합병 본계약에 서명한다.

2000년 12월22일 합병 양해각서 체결 후 꼭 4개월 만이다. 그러나 이날 합병 본계약 체결은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을 위한 서곡이었다. 우연을 씨줄로, 필연을 날줄 삼아 잉태된 슈퍼뱅크의 산고(産苦)는 그렇게 시작됐다.

◇동상이몽에서 시작된 합병=2000년 3월. 헨리 코넬이라는 사람이 김정태 당시 주택은행장을 찾아왔다. 헨리 코넬은 골드만삭스 아시아지역 총책임자로 99년 5월 5억달러 규모의 당시 국민은행 투자를 성사시킨 주인공이다.

김정태 행장의 회고. “2000년3월 골드만삭스의 헨리 코넬 아시아담당자가 찾아와 국민은행과의 합병을 제의했다. 그때 검토해 보겠다고 했고 나중에 호주 컨설팅사인 CVA를 통해 합병 시너지 효과 등을 조사했다.”

이후 주춤하던 두 은행의 합병작업은 2000년 11월 중순 모 행사장에서 두 행장이 조우하면서 극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리고 12월22일 합병 양해각서가 체결된다. 하지만 이들 두 은행이 애초부터 서로에 대해 ‘호감’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2000년 11월 중순. 서울 여의도 CCMM빌딩 김병주 칼라일그룹 아시아담당 회장실. 김영일 당시 주택은행 부행장(현 국민은행 부행장)이 ‘커티스 콜(사전 예약)’도 없이 찾아왔다.

김부행장:한미은행 지분 인수(11.14)를 축하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주택은행은 한미은행에 (합병상대로서)관심이 많습니다.

김회장:칼라일도 외환위기 이후 줄곧 국민과 주택은행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미은행에 투자한 지 며칠 안됐기 때문에 은행을 정상화시키는 게 급선무입니다.(주택과 한미의 합병에 대해) 6개월 정도 후에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김부행장:시간이 없습니다. 어쩌면 국민과 주택은행이 합병을 할지도 모릅니다.

주택은행의 한미은행에 대한 ‘구애’는 서로간의 합병에 대한 시각차만 확인한 채 이렇게 소득없이 끝났다. 사실 주택은행은 한미은행보다 신한은행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2000년 중반 무렵부터 무척 공을 들였다. 김정태 행장은 이희건 당시 신한은행 회장을 만나기 위해 일본까지 건너가기도 했다. 그해 6월에는 라응찬 당시 신한은행 부회장을 만나 합병의사를 타진하기도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김행장은 이기호 청와대 수석까지 동원한다. 라부회장을 만나서 설득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부회장을 만나기로 한 6월23일 이수석이 김대통령을 수행해 방북하면서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상훈 국민은행장도 부임 후 2개월 뒤인 2000년 5월26일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은행과는 합병하지 않겠다”고 밝힌다. 김행장은 우선 한미은행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하지만 김행장의 한미은행 ‘구애’는 외국인 대주주의 반발 등이 맞물리면서 원점 회귀한다. 김행장은 또 신한은행 라부회장과도 접촉을 갖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다.

◇합병의 닻은 오르고=2000년11월14일 서울 남대문로 힐튼호텔 SBS창사기념 만찬장. 수많은 금융기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상훈 행장과 김정태 행장도 모습을 보였다.

김상훈 행장이 김정태 행장을 향해 먼저 말을 꺼냈다. “합병만 생각하면 밤에 잠이 안옵니다.” 그러자 김정태 행장도 화답했다.“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택은행과는 아무도 합병을 안하겠답니다.” 이날 두 행장의 만남 이후 국민·주택은행 합병은 급물살을 타게 되고 출처를 알 수 없는 각종 합병 시나리오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양해각서 체결까지의 40여일은 그야말로 두 은행장에게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10여일이 지난 2000년 11월25일. 이번에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조찬간담회에서 김상훈 행장과 김정태 행장을 몰아붙였다. ‘합병을 말로만 하지 말라’는 게 이날 논조의 핵심이었다.

12월12일에는 김상훈 국민은행장이 노조로부터 수모를 겪기도 한다. 노조측이 합병철회를 요구하며 행장실을 봉쇄하고 시너를 뿌리며 실력행사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도도한 합병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2000년 12월22일 오후 4시50분. 양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의 김상훈 행장과 김정태행장이 조금 초췌한 모습으로 한국은행 기자실에 들어섰다. 이날 오후 4시20분쯤 시내 모 호텔에서 합병 양해각서에 최종 서명한 뒤 곧장 기자실로 오는 길이었다. 이어 오후 5시. 김상훈 행장이 두 은행간의 합병합의서에 대한 기자발표문을 낭독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오늘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내년 6월까지 합병작업을 마무리짓기로 했습니다.” 세계 60위권의 공룡은행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간 국민은행 일산연수원에는 당초 예상보다 많은 2만여명의 국민·주택은행 직원들이 합병결사 저지를 위해 모였다.이후 공권력 투입 등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노조의 파업투쟁은 28일 잠정 파업중단으로 현업에 노조원들이 복귀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치열한 샅바싸움=금융감독 당국 고위 관계자의 말. “주택은행은 당초 MOU체결 후 이듬해 2월 말까지는 모든 합병관련 작업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합병준비가 상대적으로 덜 된 국민은행의 입장은 달랐다.국민은행은 시간을 벌면서 나름대로 기득권을 가지기를 원했다.”

이런 가운데 2001년 1월4일 양 은행간 합병작업을 담당할 합병추진위원회가 6명으로 발족된다. 합추위는 출범 초부터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김영일 부행장의 회고. “얼마나 합추위에서 싸웠으면 최범수 간사가 회의 전에 ‘농담 하나씩 하고 시작하자’고 했겠습니까? 술을 한 잔도 못하던 김유환 국민은행 상무는 술고래가 다 됐을 정도였으니.”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합추위 공방전은 2월 들어서면서 다시 뜨거워졌다. 김유환 국민은행 상무가 주택은행이 관리하는 ‘국민주택기금’의 고정이하 불건전여신이 ‘조’단위에 이를 것이란 주장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건건이 합병쟁점을 놓고 부닥치던 합추위는 3월24, 25일 이틀 동안 충남 도고 파라다이스호텔에서 합병 핵심쟁점사항을 집중 검토, 권고안을 마련한다. 그리고 3월29일 새벽 6시. 6인의 합추위원들은 표결로 국민은행을 존속법인으로 하는 계약서 초안을 의결하고 이튿날 오후 4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계약내용을 발표하기로 합의한다. 그러나 최대위기가 찾아왔다.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30일 최범수 합추위 간사를 통해 합추위의 의결사항을 받아 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해 온 것이다.

김병주 합추위원장의 회고. “김정태 행장이 합추위안을 틀고 나왔다. 이유는 존속법인을 국민으로 할 경우 통합은행 CEO도 국민은행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협상이 난항을 겪자 급기야 이근영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중재자로 나섰다. 이 위원장은 4월 6일과 9일 두 차례 금감위로 두 행장을 불러 중재에 나섰고 10일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는 르네상스 호텔에서 밤샘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결론에 이르진 못했다.
11일 오전 합추위 김유환 상무가 한은 기자실에서 합병권고안을 기습발표한 후 이금감위원장과 두 행장은 11일 오후 6시쯤 다시 서울 마포 가든호텔에 모여 수정 합의안에 합의하고 2시간 뒤인 오후 8시30분 합추위 사무실에서 협상 합의를 발표한다. 이후 10여일간 결렬과 타결을 넘나들던 우여곡절 끝에 4월23일 마침내 합병 본계약이 체결된다.
합병작업이 ‘한 고비’를 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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