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인 지난 6일 새벽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서울 강남의 한 휘트니스 센터는 하루 일과를 운동으로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1년 전부터 이곳에서 아침운동을 하고 있다는 직장인 김현곤씨(35)도 그 중 한사람.
지난해 이맘때 쯤 흉하게 튀어 나온 자신의 배를 보고 심한 ‘충격’끝에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는 그는 “평일에도 빠지지 않고 이곳에 나와 러닝머신으로 몸을 풀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그저 뱃살을 빼고 직장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나 해소하자는 차원이었는데 이제 하루라도 (운동을) 거를 수 없게 됐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뭐 그런거 있잖아요. 안하면 왠지 찜찜하고 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는….”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이마에 매달린 소금땀을 수건으로 연신 걷어내면서도 그는 마라톤 예찬론을 폈다.
“이런 느낌 알아요. 30분 정도 달리고 나면 마치 몸이 날아갈듯 가뿐해지는 기분. 그걸 말로 표현할 수 있나요?” 그는 “요즘 마약에 중독된 듯 달리기에 빠져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의 이런 현상을 전문가들은 달릴 때 느끼는 쾌감의 일종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비유한다.
◇러너스 하이란=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심리학자인 아놀드 맨델이 자신의 논문 ‘세컨트 윈드’(1979년)에서 처음 소개한 이론이다. 달리기를 시작해 30분 정도가 지나면서 피곤하던 몸이 갑자기 가뿐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경험자들은 이때의 기분을 마치 ‘하늘을 나르는 듯한 느낌’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이같은 기분은 마라톤뿐 아니라 중간강도의 운동을 30분 이상 계속해도 느낄 수 있다는게 전문의들의 설명이다.
◇달리기로 우울증을 치료한다=미국의 정신과 전문의들은 적당한 운동은 우울증 치료에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조깅이나 러닝을 하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효과가 있는 베타엔돌핀의 혈중농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인 달리기는 체중감량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 외에도 요즘같은 가을에 흔히 발병하는 가벼운 계절성 우울증을 예방하는데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의 페르난도 디메오 박사는 최근 영국의 한 스포츠의학지에 밝힌 연구보고서에서 유산소 운동이 우울증 환자의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효과가 있으며 치료 시간도 단축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디메오 박사는 “심한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 12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러닝머신에서 30분만 운동을 해도 우울증 증상을 즉각적으로 완화시켰다”며 “이는 일반적으로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데 사용하는 항우울제보다 더 빠른 효과를 보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상은 있지만 원인은 몰라=그러나 의학계에서는 아직 운동중 쾌감을 느끼는 러너스 하이의 원인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그 원인을 베타엔돌핀이 증가하는데서 찾는다.
베타엔돌핀이란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마약의 일종인 모르핀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물질은 통증을 잊게하고 정신적인 쾌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한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게임중독(게임 의존증상) 역시 베타엔돌핀이 주는 쾌감에 지속적으로 탐닉하게 되는 증상이다. 이 물질은 대부분의 의존증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가하면 뇌나 척수 등 중추신경계의 화학적 전달물질인 ‘오피오이드 펩티드’가 러너스 하이를 일으키는 원인물질이라는 주장도 있다. 오피오이드 펩티드는 스트레스 및 기분조절에 관여하는 펩티드 계열의 신경전달물질로 아편, 모르핀, 헤로인 등의 마약과 유사한 구조 및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달리기나 운동을 했을 때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는 작용을 하는 호르몬인 ‘노어아드레날린’이 그 원인이라는 ‘모노아민 이론’도 있다. 러너스 하이의 원인을 두고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실 박원하 실장은 “러너스 하이를 느끼려면 평소 심장박동수가 낮은 사람이라도 1분에 120회 이상 박동수를 느낄 정도로 다소 힘든 달리기를 해야한다”며 “사람마다 개인적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평균 30분 이상 꾸준히 달려야한다”고 말했다.
/ kioskny@fnnews.com 조남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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