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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활성비타민제 ‘아로나민골드’ 40돌

임호섭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0.13 10:13

수정 2014.11.07 13:15


1963년 첫 발매된 ‘국민영양제’ 아로나민골드가 발매 40주년을 맞았다.

아로나민은 1950∼60년대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렸던 다케다약품의 ‘아리나민’이 원조다.

종균배양기술이 전무했던 당시(1958년 8월) 일동제약은 다케다약품이 아리나민을 만드는데 사용한 물질인 ‘TPD’라는 유도체를 불과 1년여 만에 독자개발했는데, 이것이 국내 최초의 활성지속형 비타민제 ‘아로나민’의 원료다.

마늘 속에서 유도·분리해 낸 이 물질은 마늘 특유의 냄새와 쓴맛 등이 없으면서 효능은 일본의 ‘TPD’와 똑같았다.

지금은 100정짜리 1통의 소비자가격이 1만6000원 정도로 그다지 부담이 없지만 출시 당시만 해도 아로나민 10㎎ 100정짜리 1통은 무려 300원으로 웬만한 봉급쟁이는 감히 엄두도 못내는 가격이었다. 또 10여개나 난립한 유사제품의 값이 결코 싸지 않은 50∼60원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시장 경쟁력에서 당연히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출시초기의 시판량은 고작 한달에 1∼2통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60년대 후반부터 유명세를 얻기 시작해 무려 40년간 국내 활성비타민제 시장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국내의 유명 비타민제는 대부분 구호물자형태로 들어왔던 미제가 판을 치고 있었던 터라 일동제약으로서는 감격 그 자체였다. 이후 아로나민은 단 한번도 국내 비타민제 시장에서 1위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매일같이 아로나민을 복용하고 있다는 이금기 일동제약 회장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며 “아로나민의 성공은 과감한 마케팅 덕분이었다”고 회고한다.

무엇보다 방송광고를 이용한 스포츠마케팅의 힘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아로나민은 1965년 6월 권투선수 김기수의 세계주니어미들급 타이틀매치 방송에서 첫 전파를 타면서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로선 거금이었던 150만원에 MBC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고, 타이틀 매치 3개월 전부터 포스터와 아치를 제작해 서울시내 전역에 내걸었다.

당시 일동제약이 내건 마케팅 슬로건은 ‘체력은 국력’이었다. 이 슬로건은 가난 극복이 최대 과제였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순식간에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데 성공한다. MBC는 무려 5년 동안 스포츠 방송프로그램을 ‘일동스포츠’로 사용했을 정도다.

이후 일동은 ‘의지의 한국인’ 시리즈를 선보인다. 70년대 초반 이 시리즈물은 고단한 삶을 영위하던 한국인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긍심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아로나민의 광고는 국내·외 각종 광고대회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고 고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는 이 광고를 ‘광고의 공익성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아로나민이 대표적 국민영양제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면에 이런 저력이 숨겨져 있었던 셈이다.

아로나민은 이후 1970년 골드로 재탄생한 이래 지난해 1월에는 국산 의약품으로는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點字)표기제품으로 발매되면서 또한번 도약기를 맞고 있다.
일동제약은 올해로 창립 62주년을 맞았다.

/ ekg21@fnnews.com 임호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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