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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여숙화랑’ 박여숙 대표] ‘예술가의 초상’ 그 든든한 그림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0.16 10:13

수정 2014.11.07 13:10


정서가 말라 비틀어져 가는 것은 세상사에 무심해져 가는 것이다. 그건 내면으로 잣아지며 흐르던 물길이 증류해 건천(乾川)을 품고 사는 것이다. 내 안의 물음을 다른 의문과 만나게 하고 공명하고 싶을 때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찾는가. 그렇때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찾는다. 섬세한 리듬과 결을 찾아 서로 스며들고 어루만질 때 흘러나오는 감성, 그 웅숭한 것을 맛볼 수 있기때문이 아닐까.

박여숙. 강남구 노른자위인 청담동에다 박여숙화랑이란 갤러리를 내고 있는 40대 여인이다. 박여숙을 보면 중년에도 불구하고 팝(pop)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 말은 다양성을 함축하고 있다. ‘젊어 보인다’ ‘지적세련미가 겸비되어 있다’ ‘앞서간다’ 등.

팝한 박여숙은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인터뷰에서 마치 말(語)기계처럼 술술 말을 잘했다.사람이 무언가를 표현할 때 우선 침묵이 깃들고 그런 다음 다른 이의 소리를 파악하는 법인데 박여숙은 전혀 낯설지 않다는듯 자신의 견해를 물흐르듯 피력해 나갔다.

“화랑은 경쟁력이 있어야죠. 좋은 화가를 찾아 무언가 일궈낼 때의 성취감은 말할 수 없죠.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해요. 그림은 물론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박여숙은 지금까지 김점선 김강용 전광영 이영학 김종학 이진용 이영섭 등을 화랑에 초대하여 이들을 미술계 보배로 만들어 놓았다. 철학을 전공하다 화가가 된 김상유는 이중섭 미술상까지 수상해 박여숙을 기쁘게 했다.

“좋은 미술가들을 발굴하여 그 작품들을 전시, 홍보하고 판매에 연결시키는 일이 화상의 일이죠. 뛰어 다녀야 해요. 그래야 경쟁력이 있죠.”

화가들은 수줍움을 잘탄다. 제 손으로 제 작품을 ‘사주세요’ 하기가 여간 간지러운게 아니다. 그래서 화가들이 살아가면서 항상 고민하고 부딪히게 되는 그 문제를 박여숙은 입안의 혀처럼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의 인생은 그 자체로 우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박여숙은 그러고 싶어하는 화가들을 대신하여 그림을 구하려는 사람들에게 화가의 진실이 보이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남의 아픈 삶을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 그림의 가치를 알겠는가. 존재와 존재가 서로 삐걱거리고 뒤척이며 내는 소리들. 화상은 그런 다양한 울음소리를 받아들여 일반대중에게 그 가치를 깨닫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붓의 터치가 만들어 내는 만물의 소리는 창조적 예술품의 절정인 까닭이다.

그녀에게 예술의 시작은 마음이라고 한다. 학창시절부터 예술의 향기랄까 그런 것에 목맨 ‘얼짱’이었다. �P만나면 고미술 컬렉션이나 전시회 같은 곳을 얼쩡거렸다.그리고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낮은 포복으로 혼자서 일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려왔다.

그 움터가 바로 지금의 화랑인 셈이다. 여기다 ‘우리 그릇 려(麗)’라고 하는 전통그릇 매장도 가지고 있다. 그릇에서도 생활 속의 문화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의 다른 한쪽 눈은 예술의 대중화라는 아이콘을 끼고 있다. 예술을 이해하면 인생이 행복해지고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깊어진다. 제대로 된 화상은 예술적 안목과 경영감각을 동시에 갖추어야 하고 현실적인 여러 걸림돌을 넘어야 한다. 바로 미술의 대중성 확보다.

박여숙은 화상이라는 직업을 통하여 예술가와 사람들을 이여주는 가교역할에 삶의 희열을 맛본다. 이런 인식의 소유자는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걸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그녀는 국내가 좁다. 그래서 가슴을 열어보니 미국, 독일, 스위스 등에서 열리는 국제페어가 안겨왔다. 95년 국내 화랑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3대 아트페어 중의 하나인 바젤 아트페어에 참가,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또한 마이애미, 샌프란시스코, 맬버른, 쾰른, 아트팜비치 아트페어에도 얼굴을 내밀어 우리 미술이 어떤 것인가 보여줬다. 박여숙은 해외작가의 국내전까지 움켜쥐었다. 프랭크 스텔라,이고르 미토라이, 짐다인, 제니퍼 바틀렛, 샘프란시스, 패트릭 휴스 등을 불러들여 국내관객들에게 새로운 미술세계에 눈뜨게 해줬다.


박여숙이 재신임 받아야 한다면 그건 너무 일찍 세계적으로 놀았다는 것과 신진작가에게 발표의 기회를 너무 자주 제공했다는데 있다.

그녀는 “미술계에서 상생하기 위해서는 작가와 화랑의 믿음이 필수조건”이라 말한다.
박여숙은 한국의 전통과 맥을 현대적 감각으로 살린 한국적인 현대 미술을 세계에 우뚝 세우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 한다.

/ jch@fnnews.com 주장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