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중동평화 로드맵 어디로

장승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0.17 10:14

수정 2014.11.07 13:08


지구상에서 가장 대립되는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우연찮게 똑같은 시조 아브라함을 섬긴다. 아브라함은 많은 재산과 종을 거느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다.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그는 이집트인 종 하갈에게서 아들 이스마엘을 얻는다. 하지만 이스마엘이 14세 되던 해 하느님의 뜻대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얻게 된다. 이때부터 이스마엘과 이삭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싹튼다. 특히 하갈의 질투는 극에 달해 이삭에 대한 증오심이 날로 깊어져 간다.
이를 눈치챈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일정량의 재산을 보태주며 개척지에서 새롭게 자손을 꾸려갈 것을 주문한다. 세월이 흘러 이삭은 부족에 남아 유대민족을, 이스마엘은 새로운 개척지에서 아랍민족을 구성했지만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순혈’이란 주장은 절대 굽히지 않았다. 이른바 중동분쟁의 씨앗인 셈이다.

동예루살렘, 예리코시 등 주요 지역을 둘러싼 영토 분쟁 역시 두 민족간의 골은 더욱 깊다.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은 이들 싸움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2차대전 당시 제국주의 영국은 자신의 식민지인 팔레스타인 지역을 미끼로 ‘맥마흔 서한’을 꺼내 아랍인들을 희롱했고, ‘발포어 선언’을 통해 이 지역에 유대국가 수립을 용인하는 모습을 취했다. 강한 유대계 자본을 깔고 앉은 미국의 모호한 태도 역시 아랍의 강력한 저항만 낳고 있다.

지난 6일 이스라엘은 접경국 시리아에 대해 대대적인 공습을 단행했다. 이틀 전 이스라엘 북부 휴양도시 하이파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여성 게릴라의 자살폭탄테러에 대한 보복인 셈이다. 우연찮게 이 날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 공격으로 촉발된 지난 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지 정확히 30년이 되는 상징적인 날이기도 했다. 포성이 채 가시기도 전인 16일, 이번에는 팔레스타인인 밀집지역 가자지구에 폭탄테러가 발생, 다수의 희생자를 냈다. 테러대상이 미국 외교관이었던 점으로 보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미국과의 긴장관계도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중동평화 단계적 이행안(로드맵)의 운명도 이젠 기로에 놓인 듯하다.

종교는 인간만이 지닌 고유 이성을 향해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이 기준점대로라면 종교는 폭력을 유도하지도, 종속을 요구받지도 않는다. 종교에 대한 진정한 믿음은 그릇된 현세의 가치관을 올바로 잡아 주는 성숙한 자세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중동지역의 포연을 바라보면서 이와 같은 성숙함이 지금으로선 무척 아쉬울 때다.

/ sunysb@fnnews.com 장승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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