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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텔레마케팅의 규제와 월街의 대응

장승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0.21 10:15

수정 2014.11.07 13:03


현재 미국인들이 계속되는 경기 불황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텔레마케터들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텔레마케팅이 이제는 휴대폰 판매, 신문 및 잡지 정기 구독, 그리고 여행상품 판매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경제의 불황이 계속되면서 대부분의 가정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걸려오는 온갖 종류의 광고 전화는 이미 일반 소비자들로 하여금 불편을 넘어서 정부규제를 요청하기까지 이르렀다.

최근 연방정부는 급속도로 늘어가는 텔레마케팅에 일반 소비자들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텔레마케팅을 법적으로 제한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고 이에 기업들의 항소로 인해 연방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5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연방공정거래위원회(FTC)의 ‘전화수신거부리스트(do not call list)’에 등록해 광고 목적 혹은 서비스 판매 목적의 텔레마케팅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했다. 반대로 기업들은 연방 정부가 텔레마케팅 제한이 헌법에 보장받은 개인 및 기업의 언론, 출판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이미 수차례 법원에 의해 이와 관련된 판결이 번복되면서 ‘전화수신거부리스트’는 효력을 잃기도 하고 다시 갖기도 하는 해프닝을 반복해 왔다. 지난번 법원의 결정에서는 FTC가 주도하고 있는 텔레마케팅의 금지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있었다. 또 연방법원은 FTC가 더 이상 ‘전화수신거부리스트’를 받지 말 것을 명령했으나 FTC는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한 상태다. FTC는 여전히 텔레마케팅 제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으며 법원의 다음 판결이 있을 오는 11월10일까지 일반 소비자들의 리스트 등록을 계속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법정에선 우선 언론·방송을 통한 소비자 유도와 전화라는 매개체를 이용한 소비자 유도가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지가 가장 핵심적인 법리논쟁이다. 또 연방방송언론위원회의 규제를 받고 있는 언론사의 광고와 FTC가 주도하고 있는 텔레마케팅의 광고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주요 쟁점사항이다. 또한 기업들은 정부가 사기업의 홍보 및 광고활동을 규제한다는 점에서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FTC가 현재 받고 있는 ‘전화수신거부리스트’는 이미 91년 의회에서 제안된 바 있다. 당시 의회는 연방방송언론위원회가 이 리스트를 만들 것과 리스트에 등록된 소비자에 한해 텔레마케팅에 노출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에 대한 권리가 주어졌었다. 하지만 당시 연방방송언론위원회는 이러한 정책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으로 판단, 실행을 보류한 상태다.

지난 2002년 FTC의 의장인 티모시 무리스는 일반 소비자들이 받는 무차별적 텔레마케팅의 폐해를 방지코자 다시 텔레마케팅 규제프로그램을 만들고 웹사이트를 통해 ‘전화수신거부리스트’를 시행했었다.

하지만 당시 가장 큰 문제는 FTC가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의회승인이 없었다는 이유로 텔레마케팅을 주요 마케팅 기법으로 사용하는 많은 기업들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FTC는 지난 91년도 법안이 의회 결정에 의한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당시에 만들어진 법안은 너무나 많은 예외 규정을 담고 있어 이 법안을 주축으로 한 현행 리스트는 한동안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몇달 동안에 각 지방법원과 연방법원을 통한 일련의 고소와 재판을 통해 ‘전화수신거부리스트’가 합법이다, 불법이다를 반복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연방무역위원회의 ‘전화수신거부리스트’ 역시 효력을 발생하였다 말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한편, 대체 법안으로 소비자들이 발신자 확인서비스(caller ID)에 의해 텔레마케터의 전화가 광고성 전화임을 밝히는 것을 의무적으로 하는 것과, 텔레마케터에 의한 광고성 전화를 자동으로 인식, 이를 받지 않는 전화기술 등도 함께 소개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텔레마케팅에 의존도가 높았던 뉴욕 월스트리트의 증권, 금융 및 각종 투자회사들은 텔레마케팅 규제에 대해 전면적으로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텔레마케팅이 규제된 뒤의 마케팅 방법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텔레마케팅을 규제하는 것은 더 많은 우편물이나 스펨메일을 의미할 뿐,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나만을 두고 본다면 그다지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합법상태인 직접 방문 마케팅이 더욱 늘어날 경우에는 오히려 소비자들로 하여금 더 큰 불편을 줄 가능성이 있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소비자를 만나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권유진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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