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 5년] <11> SKG협상 긴박했던 물밑 지략전

임대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0.27 10:16

수정 2014.11.07 12:55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 국내채권단과 해외채권단 사이의 협상 막후에는 마치 중국의 역사소설인 ‘삼국지’를 연상시키는 듯한 치밀한 지략과 전략이 있었다.

2003년 9월에 접어들면서 SK네트웍스 사태는 기대와는 달리 점차 벼랑끝으로 가고 있었다. 해외채권단의 동의가 있어야만 채무재조정이 확정되지만 해외채권단은 채권현금매입(CBO) 비율 100%를 주장하며 꿈쩍도 하지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SK네트웍스의 상장폐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9월까지 채무재조정을 확정지어야만 했다.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의 속마음은 타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나은행은 고민끝에 SK네트웍스 구조조정 작업에 간여하고 있던 L씨에게 해외채권단을 설득시켜 달라고 요청한다.
L씨는 SK네트웍스 구조조정 작업에서 외부컨설팅을 하고 있던 사람으로 언변이 뛰어나 사람을 설득시키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특사’ 임무를 띤 L씨는 곧바로 홍콩으로 날아가 SK네트웍스 문제를 담당하고 있던 해외채권단의 최고책임자 제이크 윌리엄스 스탠더드차터드 이사를 면담한다.

▲L씨:해외채권단이 조속히 채무재조정에 동의해 줘야만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윌리엄스 이사:그 이유가 뭡니까?

▲L씨:첫 번째 이유는 한국 검찰이 이달(9월)말쯤 SK그룹의 비자금 사건에 칼을 댄다는 믿을만한 정보가 있습니다. 해외채권단이 지금 채무재조정에 동의해 주지 않으면 자칫 SK네트웍스는 물론, SK그룹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때 가서 후회해봐야 이미 늦게 됩니다.

▲윌리엄스 이사:(고개를 끄덕이며)그럼 두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L씨:두 번째 이유는 SK㈜ 대주주인 소버린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소버린은 SK㈜가 SK네트웍스를 지원하는데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 소버린이 이달말이면 주총 소집권한 등 의결권을 갖게 됩니다. 그때 가서 뒤늦게 채무재조정안을 승인해 줘 봐야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한국의 채권단과 해외채권단은 모두 공멸하게 됩니다.

L씨의 논리정연한 주장을 들은후 윌리엄스 이사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하나은행은 9월14일 채무재조정 동의를 확인하는 공식문서를 해외채권단에 보낸다. 3일 후인 9월 17일. 전 해외채권단이 채무재조정에 동의한다는 공식문서를 보내왔다.


국내채권단의 해외 법률자문사 조차 깜짝 놀랐다. 의사결정 후 문서작성까지 기본적인 일정만 최소 5주가 걸리는 협상이 단 3일만에 타결된 것은 국제협상에서는 유일무이했기 때문이었다.


말 한마디로 오나라 손권을 회유시켜 적벽대전이라는 역사적 대전(大戰)을 이끌어낸 제갈공명이 떠오를 정도로 SK네트웍스 협상의 이면에는 수많은 전략과 지략이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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