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 대기업금융 규제논리의 한계

차석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0.29 10:17

수정 2014.11.07 12:50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방지하기 위한 논의가 재경부와 공정위가 구성한 테스크포스(TF) 팀을 중심으로 한창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것으로는 의결권 제한, 자산운용 한도 축소, 제2금융권에 대한 출자자 자격유지 제도 도입, 금융회사 계열분리청구제 도입 등이다.

이중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의 자산운용에 연관된 규제를 강화하려는 이유는 산업자본과 금융회사의 이해상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음의 세 가지 요인들 때문이다. 첫째,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할 경우 기업의 이해에 따라 금융기관의 자금이 기업의 무리한 확장, 위험한 투자 등에 과도하게 동원되어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 둘째, 금융회사의 계열기업에 대한 자금의 편중지원은 금융자금의 최적배분을 가로막고, 그것이 국가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 셋째, 산업자본가인 대주주의 사적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고객재산을 전용할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려들에 근거한 규제들이 얼마나 타당한지 한번 검토해 보자. 첫째, 외환위기 이후 부실금융기관 및 부실기업의 임직원에 대한 소송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만일 여전히 무모한 투자를 감행하는 대기업주가 있다면, 이는 이미 도입?^활용 중인 경영의 투명성을 위한 공시제도, 경영판단에 대한 사법적 책임제도, 사외이사제도 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일 것이므로, 우선 이러한 기존의 제도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수정?^강화되어야 마땅하다.

둘째, 사실상 금융회사의 자금운용에서 분산투자는 상식이다. 실제로 자산의 운용규모가 늘어나는데 비해 한국의 자본시장에서 분산투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대기업 금융회사들은 오히려 범세계로 분산투자하는 금융상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 어떤 멍청한 금융회사가 계열기업에 편중지원을 해 문제가 발생했다 하자. 그러면 그 경영자는 주주의 이익극대화에 반하는 행위를 했으므로 당연히 선관주의 의무와 충실의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고, 굳이 선진국 사례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법원은 이미 그런 판례를 쌓아 놓고 있다.

또 국가경제의 성장잠재력이 금융지원의 편중으로 위축된다고 하지만, 이는 성장잠재력의 결정요인에 대한 부분적 지식에 근거한 우려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제성장 잠재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본의 왜곡적 배분이라기보다 인적자본의 경쟁력 약화, 비효율적 제도, 반자본주의적 국민정서 등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셋째, 고객의 재산을 전용할 우려는 대기업의 대주주보다 소형 및 중형 금융기관의 대주주 경우가 훨씬 더 크다. 실제 외환위기 이후, 금융사고는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보다 중소형 금융회사에서 더 빈발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대기업 계열 회사들이 그 어느 그룹―심지어 정부나 국회―보다 투자가?^언론?^정부?^시민단체 등의 더 많은 감시를 받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기업에 대한 자산운용과 연관된 규제는 미국식 기업구조와 시장규제를 그대로 따라갈 것이 아니고 한국의 기업구조 및 시장구조에 맞는 쪽으로 변환시켜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지주회사 구조가 전혀 다른 만큼, 그와 관련된 규제도 같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제네럴 일렉트릭(GE)은 지주회사로서 항공기 엔진사업, 의료사업, GE캐피털, NBC 방송국 등 28개 사업군을 거느리고 있지만 상장된 주식은 GE 하나뿐이다. 이는 산하 기업들의 주식이 지주회사와 함께 상장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지주회사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물론, 정부가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적절한 수준에서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를 가하는 것은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기업구조 및 자본시장의 특성에 비추어 국가경제의 성장과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좀더 발전적 방향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대기업 금융회사들의 자산운용의 대해서는 규제보다 금융감독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규제의 칼을 쥐고 있는 정부나, 대기업 비판에 앞장서는 시민단체들이나, 기업경영의 막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기업주 당사자들이나, 일반 국민 모두 우리의 과거에서 보았듯이 멀쩡한 대기업 하나를 죽이기는 잠깐이지만, 그만큼 번듯한 기업 하나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얼마나 많은 국민적 노력과 투자가 필요했던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규제의 논리가 지속적 성장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모두 같이 주저앉자는 식의 형평논리를 앞세운 것이라면 결국 이는 모두의 손해인 것이다.

/이종욱 서울여대 경영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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