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전경련 회장자리 진통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0.31 10:18

수정 2014.11.07 12:45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자리가 억지로 떼밀어서 시킬 자리인가.’

‘재계의 힘을 한 곳에 모아야 할 시점에 전경련 회장자리를 비워둘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이번만큼은 그대로 당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에서 비공개로 열린 회장단 간담회에서 이날 SK비자금 문제로 공식사퇴한 손길승 회장의 후임 선임을 놓고 회장단간에 오간 얘기다.

4시간 넘게 거듭된 회의 끝에 최연장자인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을 추대키로 하고 밤늦은 귀가길을 서둘렀다.

‘산고(産苦)끝에 옥동자’가 되는가싶더니 그 기대감은 하루를 못넘겼다. 이튿날인 31일 아침, 동아제약은 ‘건강상 이유로 도저히 회장직을 수행할 수 없다며 강 회장이 고사의지를 밝혔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강회장은 출근도 않고 어디론가 잠적해버렸다.


이어 열린 현명관 부회장의 기자간담회는 자연적으로 후임 회장과 전경련의 진로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 자리에서 현부회장은 당초 회장단의 분위기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재계를 이끌 수 있는 강력한 회장체제를 구축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전경련 회장자리를 공석으로 장기간 비워 둘 수없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내부규정상 최연장자인 강회장을 추대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강회장 대행체제로 유지될지 아직 미지수이지만 전경련은 아직도 후임회장의 기본 컨셉트를 ‘도덕성을 갖춘 재계 리더급 회장’에 두고 있는 듯하다.

이건희 삼성회장, 구본무 LG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회장 등 이른바 ‘빅3’가 강력히 고사하고 있는데다 그나마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몇몇 중견그룹 회장들도 손사래를 치고 있다.

지금은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유교적 전통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본인이 싫다는데 끝까지 떼밀어 회장으로 추대한들 전경련의 체면이 무엇이 되겠는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데는 중량급 인사가 필요없다. 전경련은 지금 당장, 비상체제를 구축하고 대관(對官), 대정부(對政府) 전문통이나 죽을 각오로 싸우는 검투사(Gladiator)급의 인물을 대상으로 ‘회장 공개모집’에 나서야 한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가(楚歌)에 마냥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 cha1046@fnnews.com 차석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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