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대통령과 구설수/주장환 문화부장

주장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1.17 10:22

수정 2014.11.07 12:24


미국의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은 여타 미국 대통령에 비해 주요도가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사생활, 다시 말해 섹스 스캔들에 관한한 다른 대통령들을 멀찍이 따돌리고 있다. 루스벨트의 딸 롱워스는 하딩을 가리켜 ‘지저분한 인간’이라 평했으며 언론인 앨런 화이트는 ‘남성매춘부’라 쏘아댔다. 두 번의 혼외정사를 했으며 브리튼이라는 여자와 사생아를 낳기도 했다. 하딩은 세금법안에 관한 브리핑을 받고는 “나는 이 골치아픈 세금 문제를 전혀 알 수 없네. 이쪽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쪽 말을 들으면 저 말이 옳은 것 같고… 어딘가 진실을 아는 경제학자가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고, 혹시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를 알아보고 밀어주는 판단력이 내게 있는 것 같지 않네. 대통령 노릇 정말 못해먹겠어.”

그러고 보면 대통령 노릇 못해 먹겠다는 말은 노무현 대통령이 먼저 한 말이 아닌 모양이다.

미신을 잘 믿었던 16대 대통령 링컨의 게티즈버그의 연설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말도 사실은 그의 작품이 아니다. 노예제도 폐지자인 시어도어 파커와 정치가인 대니얼 웹스터가 먼저 한 말이다.
그러면서 그의 것인양 꿰어찼으니 후안무치 아닌가. 링컨은 노예제도를 싫어했지만 폐지론자는 아니었다. 노예제도의 확산을 반대하면서도 국가를 구하려면 노예제도를 시행하는 주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믿었다.

미국인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정착민 금지구역인 엘러게이니 산맥 서쪽 땅을 불법으로 투기해 재산을 축적했으며 절친한 친구의 아내와 염문을 뿌렸다. 우리나라 투기꾼이 한 수 배워야 할 판이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흑인여자와 불륜에 빠졌으며 이중적 언론관을 가지고 있었다. ‘신문 없는 정부…’ 운운 했지만 실제로는 적대적 언론사를 폐간시키려 했다. 대통령이 되고 보수언론의 공격을 받자 신문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자신이 기혼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스캔들을 신문이 보도하려하자 취하했다. 제퍼슨은 의회를 무시하고 출석하지 않기도 했다.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백악관에 시민들을 초대한다고 국민들을 속이고는 자신과 잘 아는사람이나 부자들만 초대하기도 했으며 철자법을 잘 몰라 철자법을 잘 아는 사람을 경멸하기도 했다. 그는 성질이 더럽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야만적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증권투기를 부추겨 증권시장 붕괴를 야기시킨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는 말을 함부로 해 치명상을 입었다. 자신을 선전의 대가라 믿은 그는 비공개로 말할 때 점수를 더 잘받았다. 말에 시달린 그는 31대 허버트 후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런 고언을 했다. “아예 말을 하지 않으면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일도 없을 것이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마릴린 먼로와의 염문도 유명하다.

카터 대통령도 바닥에 망연자실 주저앉아 비통한 목소리로 “난 국민지지도 잃었으며 정부통제력도 상실했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돌아온 친구(Comeback Kid)’라는 닉네임이 있다. 힘든 정치 역정 속에서 어려움을 딛고 능수능란하게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능력을 빗댄 표현이다.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국회 상·하원에서 탄핵 과정을 겪은 그는 탄핵 심판의 부결로 대통령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

보통 탄핵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였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워터 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처하자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탄핵의 과정이 바로 탄핵을 의미했던 셈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탄핵의 과정을 통해 대통령으로서는 치명적인 손상을 당했다.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취임 초기의 실패를 재빨리 극복하고 경제부흥을 일궈내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다.

민주사회의 본보기라 할 미국에서도 이런 이면이 있으니 대통령직이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자리임에 틀림이 없다. 절대고독 속에 마지막 단안을 내려야 하는 무서운 자리이며 마치 광화문 네거리에서 벌거벗고 유리관에 갇혀 있는 듯 모든 걸 다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이 언론사들과의 자리가 잦아지고 있다. 여러 미국 대통령이 온갖 구설수에 시달렸듯 그도 잦은 입방아에 진저리가 났을 법도 하다.
그러나 언론과 대화를 자주 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그래왔듯 언론이 있는 사실을 묻어두거나 없는 일을 만들어내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장환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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