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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연 농업-농촌 현황, 문제점 보고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2.03 10:27

수정 2014.11.07 12:02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정부에 제출한 ‘농업·농촌의 비전과 농정’ 보고서는 농업개방의 파고에 노출된 우리 농업의 현주소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보고서는 농업·농촌 문제의 현실과 과제, 비전과 농정 패러다임, 정부 역할과 주요 과제 등 크게 3단락으로 나누어 문제점과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12월말께 나올 향후 10년간 농정의 뼈대가 될 ‘농업·농촌 종합대책안’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쳐 정책에 반영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보고서는 이정환 연구원장 등 농경연 연구진이 밤샘을 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작성했다는 후문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정부안을 기초로 농민단체, 관계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연말까지 농업·농촌종합대책안을 확정하도록 돼 있다”면서 “정부안을 보완, 심화하는 의미도 있으며 조율이 필요하겠지만 대책에 넣는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영세농 소득 감소속 부채 ‘눈덩이’=농경연은 지난 94년 이후 지난 2002년까지 농업의 생산성은 늘었지만 소득은 감소하는 ‘성장과 소득의 괴리’ 현상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90년대 투·융자 확충에 힘입어 농업 고정자본은 연평균 9%이상 늘고, 농업생산도 연평균 2%이상 증가했다. 생산성 향상과 수입 증가로 농산물 실질가격도 연평균 1% 떨어져 소비자 이익은 늘었지만 호당 실질 농업소득은 연평균 1.7% 감소했다.

여기에 영세농의 농업소득은 계속 줄어드는 반면, 대농(大農)계층은 증가해 농가 계층간 소득격차 확대로 인한 농가의 이질화도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농촌 농가비율은 지난 90년 57%에서 10년 사이 39%로 줄었으며 인구 2000명 미만인 면은 85년 9개에서 2000년에 170개로 늘어 농촌의 자생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각종 상환유예와 금리인하 조치를 통해 쏟아붓고 있는 26조원 규모의 농가부채는 현행 대책으로는 해결이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방죽 땜질식’으로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부채대책의 확대로 재정부담만 늘어나 내년중 6600억원의 재정부담이 소요되는 형편에서 최근 5년간 소득은 줄고 부채는 증가한 농가가 전체 농가의 22.4%나 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상환유예와 금리인하 대책은 결국 소득분배를 왜곡시키고 재정낭비를 초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부채대책의 혜택이 소수농가에 집중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개방시 쌀, 사과 등 5대 품목 집중 타격 =농업구조 역시 농가수는 영세농층에 몰리는 반면, 생산은 상층농가로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3000평의 절반가량인 0.5㏊를 짓는 농가가 총농가의 42%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경영주의 94%가 40세 이상으로 전직하기에도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 정부의 고령농 은퇴 등 구조조정 대책에도 불구, 영세농층이 쌓이는 현상이 계속될 것이란 뜻이다.

가장 뜨거운 화두인 시장개방의 영향은 고관세품목인 고추와 마늘, 수입이 금지됐던 쌀, 사과, 배 등에서 크게 나타날 것으로 우려했다. 쌀, 고추, 마늘은 관세인하로 30∼40%, 사과와 배는 수입금지 해제로 각각 10∼30% 가량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사과, 배와 10∼15%의 가격하락요인 가능성을 지닌 축산물은 각각 품질 고급화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같은 문제점이 야기된 원인으로 농경연은 정부의 책임도 지적했다. 농림부 역시 “생산성 증대가 농가소득으로 이어지지 못해 부채문제 등이 심화됐다”면서 향후 119조 투·융자계획은 냉정한 평가와 반성을 토대로 투자효과가 직접 농가소득으로 연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농경연은 90년대 농정방식이 선진농가 육성을 통한 농업발전에 치중해 다수 농가의 소득 및 부채문제를 야기했고 사업중심·정부 중심의 농정 추진으로 정부 역할에 대한 과잉기대를 조장해 결국 실망과 불신이란 ‘부메랑’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선진농가 육성보다 산업 비전을 제시하고 시장 기능으로 해결하지 못한 부분에 집중할 것을 권고했다. 또 미국, 유럽연합(EU)과 같은 선진국들이 시행중인 목표소득지지제도를 유지하는 등 소득보전과 복지지원 목표를 명확히 하면서 시장경쟁을 통해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 달성에 매진할 것을 권고했다.

◇소득직접보전·경영회생 도모 시급=농경연은 정부가 당면 과제로서 신중히 검토해야 할 주요 과제로 총 8개를 제시했다. 최저소득 보장과 경영안정 지원·유연한 진입과 퇴출을 위한 지원·농산업 성장동력 형성 지원·농산업 지원시스템 개혁·농식품 안전성 보장 시스템 구축·국토환경 보전을 위한 규제와 보상·농촌생활여건 개선·농업인 복지 지원이다.

가장 강조한 사항은 개방피해를 보전할 소득보전이다. 농경연은 쌀·고추·마늘·사과·배 등 5개 품목을 대상으로 단위면적당 조수입을 보장하는 ‘목표소득 직접지불제’의 도입을 권고했다. 가격이 떨어져 조수입이 기준년도 수준을 밑돌 경우 차액을 직접지불방식으로 보전하는 방식이다.

이에 맞춰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과정에서 국내총보조(AMS) 및 총보조금 한도 확대를 중요한 협상 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5개 품목의 소득을 2000∼2002년 기준에 맞춰 보전하는데 필요한 직접지불 규모는 2010년의 경우 개도국 지위를 유지했을 경우에는 7720억원, 선진국 지위로 바뀌었을 경우에는 3조6358억원에 달할 것으로 농경연은 전망했다.

아울러 상해위험에 대비해 산업보험 수준의 ‘농업인상해보험’을 도입하고 경영위기에 처한 농가는 구제신청을 받아 상환유예, 금리인하, 신규자금 공급 등으로 조기에 회생을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농가의 농지는 설립할 ‘농지은행’에 판 후 경영이 정상화되면 다시 재매입할 수 있도록 콜옵션제를 부여할 것을 제시했다.

일정기간 소유한 농지는 직접 농사를 짓는 것과는 관계없이 양도소득세를 감면해 땅을 빌려 주더라도 은퇴와 농사에서 손을 뗄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농업법인에 대한 비농업인의 출자제한도 폐지하는 한편, 법인의 농지소유제한 규정도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농산업 지원 시스템도 농업재정의 총액을 정하고 사업별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바꿔 농민단체의 협의해 결정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정책금융자금은 기금사업이외에는 민간은행 자금을 활용해 예산 부담과 허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농업은행’ 통합·환경부하 해결해야=신용 및 경제사업의 분리를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농협개혁은 산지농협의 경제사업기능은 산지유통센터로, 신용사업은 중앙회와의 지급보증에 의한 가칭 ‘농업은행’으로 각각 통합하는 안을 내놓았다.

농경연은 농업생산 활동으로 인해 야기되는 환경부하 문제의 관리도 시급한 현안으로 지목했다. 축산의 집약과 비료의 과잉투여 등으로 농촌지역의 환경부하가 위험수위를 넘어선 만큼 수계별, 지역별로 환경부하 허용량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농업생산활동이 이뤄지도록 ‘오염총량관리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이는 축산농가별로 사육경력을 기초로 사육생산권을 주고 하천별 수질유지 목표치와 실제치와의 차이에 따라 쿼터를 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비료와 농약에 환경세를 부과해 거둔 금액을 구매 지역 농가에 적접지불 형태로 되돌려 주는 안도 같은 맥락에서 제시했다.

농업인 사회보험 역시 국민연금보험료와 건강보험료의 일정비율을 직접 지불방식으로 지원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금보험료는 보험료의 50%, 건강보험료의 50%를 지원하되 실제 가입자 수에 따라 농업예산에서 직접 지원하는 내용이다.

/ lmj@fnnews.com 이민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