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점. 김성은씨가 고등학교 입학 후 치른 첫번째 영어시험 결과다. 낮은 영어 성적 때문에 부산대 입학도 어려울 뻔했다.
그러던 그가 영어시험, 그것도 실력이 웬만큼 있어야 하는 카투사(KATUSA·주한 미군 배속 한국군) 모집 시험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정작 놀란 것은 본인이었다.
“한번도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굳이 이유를 들자면 대학시절 야학교사로 활동하면서 줄곧 영어공부에 매달린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번역병으로 근무하면서 그는 하루종일 영어하고만 씨름을 했다. 영어로만 말하고 일하고 이해했다. 그러기를 2년. 제대를 앞두고 김씨는 영어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그의 머리에 한줄기 생각이 스쳐갔다.
“우리말과 영어의 구조가 거의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차이가 있다면 말의 순서가 다를 뿐이지요.”
우리말과 영어가 거의 같은 구조라면 영어가 왜 어려운 것일까. 그는 사람들이 영어와 우리말이 다른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거대한 황금 광산을 발견한 심정이었습니다. 곡괭이로 금맥을 캐보자고 다짐했지요.”
그것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유레카’였다.
91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직장 취업을 포기했다. 대신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 소재 ‘새들원’이라는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가 가르친 교과목은 역시 영어. 그에게서 교습을 받은 아이들의 영어 성적이 하루가 다르게 향상됐다. 특히 이듬해인 92년도 대학입시에서 그가 가르친 11명의 학생 중 10명이 영문과 등 영어관련학과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룬 것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그러나 유명학원의 스카우트 제의, 극성스런 학부모들의 과외공부 청탁을 모두 물리쳤다.
“돈을 벌자는 생각이 왜 없었겠어요, 그러나 영어교육과 관련해 새로운 교습법을 개발할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학원강사에 맛을 들였다가는 영어교육의 금맥을 캐는데 지장이 있다고 판단했지요.”
생활은 악전고투였다. 뚜렷한 밥벌이가 없었기에 그는 끼니를 거르기가 일쑤였다. 가끔 영어특강을 통한 강의료로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 맞선도 30여차례 보았지만 전부 퇴짜를 받았지요. 직장이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신념이 꺾이지 않았다. 나약해지는 자신을 다독거리며 영어교육 연구에 매달렸다. 오직 황금광산만 생각했다.
이 무렵 영어 교육과 관련해 그의 주된 관심은 입시영어에서 어린이영어로 옮겨간다. 우연치 않게 참여했던 초등학교 영어웅변대회에서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95년도부터 그는 어린이용 영어교재 개발에 전력을 기울였다. 포인트는 우리의 정서로 이해하는 영어교재 발간이었다. 초등학교 영어교재 아카데미 시리즈 103권의 발간은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98년 11월에 이루어졌다. 강감찬 등 우리의 역사를 다룬 이 교재들은 발간 초기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같은 색다른 시도에 부산시내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주목했다. 특히 99년 1월 어느 신문사 주최로 부산에서 열린 ‘김성은 초단기 영어교실’에는 1개월 동안 무려 1111명이 수강했다. 특강의 인기는 부산뿐만 아니라 주변지역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이에 자신을 얻은 그는 99년 3월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명은 ‘브릿지북스코리아’, 브랜드명은 ‘이스턴영어’였다.
초등영어교육의 선두주자인 ‘이스턴영어’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 골목 안 낡은 4층 건물의 30평 규모 사무실에서 단 6명의 직원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꿈꿔왔던 황금광산 금맥캐기의 서막일 뿐이었다.
회사 설립 후 그는 영어교육 연구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만의 독특한 영어 학습법 개발은 이때 중점적으로 이뤄졌다. 영어와 우리말을 연결지어 이해하는 연관성 학습법인 ‘브릿지학습법’, 알파벳의 대소문자와 발음법을 알기 쉽게 가르치는 ‘알파퀘스트’가 완성됐다. 이같은 노력은 바로 벤처기업지정으로 이어졌다. 영어교수법으로 벤처신기술을 인정받은 것은 국내 최초의 일이다.
김사장은 2003년 3월부터 이스턴영어 브랜드로 초등학원 프랜차이즈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사업을 하려면 수도권을 공략해야 하는 법. 3개월 후인 2000년 6월 서울에 진출하면서 이스턴영어는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그 해에만 가맹점을 250개로 늘렸다. 2004년 2월 현재 가맹점은 610개로 이 분야 선두다.
부산지역에서 조용히 시작한 브릿지학습법이 전국을 강타한 것이다. 인원도 연구원 30여명을 포함, 70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김사장은 이와같은 성장을 바탕으로 조만간 성인영어교육시장에 뛰어든다. 교재준비 등은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김사장이 브릿지학습법으로 초등영어뿐만 아니라 성인영어교육시장도 정복할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그의 황금광산 금맥캐기는 오늘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하실방 월세마저 낼 돈도 없어 전전긍긍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영어교육이라는 금맥캐기 작업이다. (02)769-1605
/ hinoon@fnnews.com 정보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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