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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호텔을 가다-LA비벌리월셔호텔]영화 ‘귀여운 여인’촬영한 ‘대리석 궁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3.02 10:51

수정 2014.11.07 20:33


호텔은 기본적으로 비일상적인 안락한 공간이다. 최고의 안락성을 제공하기 위해 고객 프라이버시를 최우선으로 하다 보면 좀 은밀해지고 무언가 다른 비일상적인 분위기 창출에 몰두하다 보면 호사스런 시설과 예술품, 장식품들로 사치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은밀함과 비일상적인 요소들로 호텔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하여 관객은 일부나마 초일류 호텔들에 대한 간접체험을 하기도 한다.

‘나홀로 집에’에서 꼬마 맥컬리 컬킨이 혼자 당돌하게 찾아 들어가는 곳은 뉴욕 최고의 호텔 중 하나인 ‘프라자호텔’이고 ‘여인의 향기’에서 비관한 끝에 자살을 결심한 알 파치노가 최후의 호사를 부리는 곳은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다. 파리릿츠처럼 다이아나비의 참혹한 사고로 영화 아닌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영화 ‘귀여운 여인’을 본 사람이면 줄리아 로버츠가 처음 만난 리처드 기어의 파격적 제안에 환호하며 목욕 거품 속으로 빠져들며 까불던 호텔 욕실의 장면을 혹시 기억할 지 모른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 LA 비벌리힐스의 ‘리전트 비벌리 월셔 호텔’이다.

“침실이 나이트클럽만하다”고 줄리아 로버츠가 전화통에다 대고 호들갑을 떨던 그 방은 방 면적이 140평이 넘고 하루 방값이 4000달러나 하는 최고급 객실인 프레지덴셜 스위트 룸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80년대에는 잡지에 등장하던 호텔사진만으로나 그 명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전통의 최고급 명문호텔이다.

비벌리힐스의 로데오 드라이브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여행명소다.

세계적 명품들이 예술적인 경지의 조명과 장식들과 어우러진 로데오거리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비일상성을 넘어 가히 환상적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거리 전체가 포인세티아로 덮이고 전구로 치장된 가로수들과 멋들어지게 장식된 쇼윈도 구경에 넋을 놓게 된다.

테스토니, 샤넬,에르메스,티파니, 카르티에 등 온갖 명품점이 한 줄로 이어진 로데오거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명품점이라고 할 수 있다.

늘어선 상점들의 구경이 끝나갈 때 쯤이면 어느덧 저만큼 앞 월셔거리의 큰 길 너머로 전체 건물을 전구로 휘향하게 장식한 호텔 리전트 비벌리 월셔가 나타난다.

황금빛 조명을 받아 마치 마법의 성처럼 떠오른 호텔의 전경은 방금 지나온 로데오거리의 꿈결같은 풍경과 너무나 잘 어울리며,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영화 속의 한 장면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1928년, LA의 부동산 개발사업가가 당시 요지로 부각되기 시작한 이 지역을 주목하고 땅을 사들여 ‘아파트먼트호텔’을 건설한 것이 이 호텔 역사의 시작이다.

르네상스풍의 디자인에 유럽에서 수입된 대리석,토스카나 석재 등 당시의 최고급 자재만으로 지어진 건물은 세 번에 걸친 LA의 대지진에도 끄떡없어 그 견고함에 대한 평가로 2차대전시 방공호 건물로 지정될 정도였다니 건축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몇 번에 걸쳐 주인이 바뀐 호텔은 호텔을 인수한 코트라이트(Courtright)라는 사람이 1971년에 지금의 별관인 비벌리 윙을 증축한 것으로 지금의 호텔의 모습이 되었다. 지금은 포시즌-리전트그룹의 계열호텔이다.

분위기 못지 않게 헐리우드와 로데오거리의 지리적인 이점으로 LA에 오는 유명인사들이 가장 많이 찾는 호텔이다. 단골 중에는 달라이라마에서부터 가수 엘튼 존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왕족, 연예인, 부호가 부지기수다. 워렌 비티, 엘비스 프레슬리, 존 레논은 모두 이 호텔의 장기 투숙자들이었다.

호텔로 들어서는 진입로인 고풍스런 El Camino Real이라는 길을 가운데로 별관인 비벌리 윙과 본관인 월셔 윙이 마주한다. 본관에 있는 메인로비는 원형 천정에 대리석 기둥들과 마호가니 가구들과 반짝이는 브라스 장식들로 LA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비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리 위압적이지 않으며 약간 어두운 듯 가라앉은 로비 공간은 바깥의 강한 태양빛과 사뭇 대조적이다. 다른 도시의 고급호텔들보다 적당히 캐쥬얼한 느낌으로 오히려 리버럴한 인상을 받는다.

이 호텔은 특성상 레스토랑과 각종의 파티장소로도 유명하다. 연회장에서는 사계절 내내 유명 부티끄의 패션쇼가 열리고 특히 연말에 호텔이 어린이들을 위해 주최하는 파티인 ‘크리스마스 캐롤 런천’과 일종의 자선행사인 ‘테디와 차 한잔’(Tea with Teddy)은 LA에서는 유명한 연말행사 중의 하나다.

아이들이 부모들과 예쁜 곰인형(Teddy Bear)을 가져와 로비 라운지에 장식하면 호텔은 자신들이 만든 귀여운 ‘리전트 베어’를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손님들이 가져온 곰인형들은 복지재단으로 보내져서 캘리포니아 각지의 여러 병원에서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선물로 보내진다. 아이들을 재미있게 하면서도 좋은 일을 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고 부모들에게 평이 좋아 호텔로서도 얻는 것이 많다고 한다.

레스토랑으로는 ‘더 다이닝 룸’이 유명하다. 캘리포니아식에 동양식이 가미된 요리 못지않게 저명인사들이 많이 모이는 사교의 장소로 유명하다. 특히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열리는 댄스파티에는 비벌리 힐, 벨 에어 등 인근 고급 주택가에 사는 스타와 유명인사들이 단골로 찾는다고 한다.

LA에서는 이들 유명인사들이 마음놓고 즐길 장소가 그리 많지 않은 터라 춤추고 마시는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사뭇 볼만하다고 하니 댄스에 자신이 있다면 한번 들러봄직도 하겠다.

1985년 호텔 비벌리 월셔를 인수해 LA에 진출한 리전트그룹은 87년부터 호텔 전체의 레노베이션 공사를 단행하였다. 당시 홍콩의 호텔 업계를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최고를 향한 집념이 맞물린 이 개수공사는 총공사비 1억 달러,공사기간 5년여에 걸친 대역사였다.

개관 때는 유럽적인 우아함과 품위의 상징이라고 자부하였으나 세월이 흘러 쇠락했던 시설들을 한풀이 하듯 전부 바꿔버렸다. 가장 구석진 곳의 화장실이나 임대점포 하나까지도 최고의 설계와 최고급의 자재로 꾸며졌다.

리전트의 트레이드 마크인 넓은 객실과 호화욕실, 우아하고 품위있는 로비, 호화로운 식당 등의 호텔시설은 모두 이 개보수의 산물이다. 비벌리월셔의 명성은 이 공사 이후에 확고해진다.

호텔을 나서며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나이 지긋한 도어맨이 인사를 하더니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오,”하며 한국인 단골을 꼽는데 말로만 듣던 인사들의 이름을 줄줄 외운다.


월셔거리의 호텔측 현관에는 성조기 아래에 검은색 호텔리무진이 마치 호텔로 밀려드는 대중 취향을 온 몸으로 막아서듯 고집스럽게 서있다.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가 현관에서 나와 리무진을 타던 영화 장면을 기억케 한다.


정통 유럽의 품위에 미국적인 호사를 더하여 경이로움마저 자아내던 전성기의 호텔 분위기보다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비벌리월셔는 언젠가는 신데렐라처럼 반짝이는 모습으로 또 한번 태어나 새로운 비일상의 세계를 펼쳐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마음 속에 자리잡는다.

/윤병권-호텔프랜코리아(www.hotelplan.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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