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인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1919년 기미 독립만세 운동에 학생의 신분으로 참가하고 난 후 일본경찰을 피해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망명길에 오른 이미륵 선생은 수많은 선생의 후배들과는 달리 일찍이 모국어가 아닌 독일어로 문필 활동을 하였다.
어느해 여름 휴가철 이미륵 선생이 남독일 어느 수도원에 몇 주간 머물게 되었다. 무뚝뚝하지만 마음씨 착한 독일인 수도승들과의 수도원 생활은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향수를 달래기에 충분하였고, 오랜만에 자연과 벗 삼으면서 독서와 사색에 잠기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어느날 여니때처럼 바깥 외출을 하고 돌아 왔는데 문을 열어주는 수사가 “당신 나라 사람이 왔어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때만해도 유럽에 한국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우리나라 사람이 왔다는 대답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이미륵 선생은 실로 십수년만에 고향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에 당신의 방에 가서 기다리는데, 얼마 있자 정말 수도승이 어떤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다.
무척 남루한 복장의 그 동행인은 그런데 아무리 봐도 동양인 같지 않은데 그 문지기 수사는 “당신 고향사람이 왔구려, 반가우시겠소”하면서 이미륵 선생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나가버렸다.
그 동행객은 알고보니 북아프리카의 마로코 사람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프랑스령인지라 프랑스군에 차출되었다가 어찌어찌해서 탈영해서 독일땅까지 도망와서 이 수도원에 보내진것이었다. 아마도, 평생 수도원에서만 보낸 이 순박한 독일 수도승들은 외국인들을 본적이 없어서인지 이 마로코인을 보자 마침 머물고 있던 이미륵 선생의 고향사람이라고 단정 지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두 사람이 말이 안통해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어 황망하게 아무 말없이 앉아 있는데, 수도승이 의기양양하게 다시 들어왔다. 고향사람을 만나서 반갑지 않느냐는 그 수도승의 질문에, 그의 호의를 저버릴수 없어 이미륵 선생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그 수도승이 말하기를, “당신네 고향말을 한번 들어보고 싶으니, 한번 두사람이 대화를 해보시지요”하더랍니다.
이런 난감할 수가. 이때 이미륵 선생에게 번뜻 떠오른 생각이 있어, “이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 맞기는 한데, 우리나라말에는 방언이 무척 심하거든요. 저사람은 남쪽끝이 고향이고 나는 북쪽끝이 고향이라서, 우리 두 사람이 쓰는 방언이 너무 달라서 서로 의사소통을 할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1930년대 독일 남부 시골 수도원에서 벌어진 해프닝입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고, 아마 더 이상 우리가 마로코 사람들과 혼동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우리의 문화적 잠재력에 대한 대외적인 시선은 그리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습니다.
/김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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