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이 지난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내놓은 이후 그의 새영화가 나올 때마다 한국영화계는 작은 소동을 빚었다. 그것은 그의 영화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의 다섯번째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제작 미라신코리아)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이번 작품은 세계 3대영화제의 하나로 꼽히는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에 대한 기대로 제작단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프랑스 배급사 MK2의 선투자 결정이나 그의 전작들이 프랑스에 소개되면서 현지 언론들이 보인 열광적인 반응 역시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를 키웠던게 사실이다.
신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홍감독의 전작들과 머리를 잇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특히 세번째와 네번째 작품인 ‘오! 수정’이나 ‘생활의 발견’ 속편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다. ‘생활의 발견’의 주인공 경수가 춘천과 경주로 떠나는 기차에 무작정 올라탔듯이 이번 작품의 두 주인공 헌준(김태우)과 문호(유지태)도 옛 애인을 찾아떠나는 1박2일의 엉뚱한 여행을 감행한다.
7년만에 만난 세 남녀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7년전 선화(성현아)는 헌준의 애인이었고 문호는 헌준의 후배였다. 그러나 헌준이 미국 유학을 떠난 뒤 선화와 문호는 연인이 된다. 문호가 선화의 화실로 꽃다발을 들고 찾아갔을 때 선화는 “남자들은 다 똑같애. 섹스만 원해. ×새끼들”이라며 신경질을 내지만 그들은 곧 ‘여관 가는 사이’가 된다.
홍상수 영화의 즐거움은 위선적인 지식인들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번 영화에서도 두 남자의 사랑을 가장한 욕정과 진심을 가장한 위선을 목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두 남자가 거의 동일한 말투로 중국집 여자에게 수작을 거는 장면에서 키득거리며 쓴웃음을 터뜨린다. 특히 그녀가 중국말을 하는 화교라는 사실에 이어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인과 나누는 뜻모를 대사가 흘러나올 땐 홍소를 금할 길 없다. 흔히 홍감독의 장기로 표현되는 ‘날카로운 일상의 잔인한 발견’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칸영화제 본선에 당당히 진출한 작품이지만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영화가 과거엔 새로웠을지 모르지만 다섯편의 필모그래피를 작성한 이젠 더이상 새롭지 않다는게 아쉬움의 골자다.
네번째 영화인 ‘생활의 발견’ 때까지만해도 느껴지지 않던 동어반복과 자기복제의 혐의도 이번 작품에선 발견된다. 우리들의 삶 자체가 지리멸렬한 동어반복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지리멸렬한 우리들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영화)마저 동어반복적이라면 속된 말로 그것처럼 재미없는게 또 있을까. 18세 이상 관람가. 5월5일 개봉.
/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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