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 성공을 이룬 사업가들은 세계 각지를 다니며 명문호텔에 투숙할 때마다 “아, 나도 이런 호텔을 하나 가지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히게 되는 모양이다.
홍콩 페닌슐라호텔의 창업자 카두리(Kadoori), 싱가폴 레플즈호텔의 창업자, 일본 오쿠라호텔의 오쿠라 기시치로가 그랬고 실상은 파리 릿츠호텔의 창업 후원자들은 런던의 금광 부호들이었다.
명문호텔이라고 정의하기 위한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하기란 어렵다. 대형호텔(Deluxe Hotel)이나 초대형호텔(Mega Hotel)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즈음 화제가 된 두바이의 Burj Al Arab 호텔이 초호화시설에 엄청난 객실료를 받는다고 하지만 그 호텔을 명문호텔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호화호텔이나 초고가호텔이라고 해서 명문호텔로 일컬을 수도 없는 것이다.
세계에는 제대로 된 호텔만도 십만여개에 이른다지만 실제로 수준급 호텔들은 대부분 대도시나 유명장소에 몰려 있기 마련이고 당연히 같은 장소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더우기 새로 생기는 호텔 중 몇몇이 명문 대열에 끼어보려고 호사스런 시설과 무한정의 서비스를 내세우며 달려들 때면 기존 명문은 수세에 몰리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면 고객은 “역시”하며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고, 명문호텔은 그 명성을 유지하게 된다. 명문호텔의 기본조건으로 서비스, 음식, 분위기, 고객층, 시설 등 여러가지를 들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텔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명문호텔은 대부분 그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사건이나 행사, 가족과 개인의 특별했던 추억으로 점철된 장소로서 단순한 잠자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문화유산처럼 호텔을 아끼고 호텔은 가능한 방법으로 지역에 기여하는 것으로 서로에게 보답하는 상생의 세월이 한참을 흘러야 비로서 명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따라서 명문호텔의 연륜은 도시나 장소의 연륜에 비례하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 제3의 도시인 시카고는 타 도시와 견줄 수 없는 역사와 위상을 가지고 있다. 자연 훌륭한 호텔도 많다. 그 중에서도 릿츠 칼튼 시카고(Ritz Carlton Chicago)와 포시즌스 시카고(Four-Seasons Chicago), 드레이크호텔 등은 지금도 늘 세계 베스트에 속하는 유수의 호텔이다.
워터 타워(Water Tower)는 시카고 시내의 대표적 명소다. 1867년에 급수시설로 지어져 1871년 시카고 대화재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다. 주변은 유명한 100층의 존 행코크 빌딩을 비롯한 초고층 건물과 블루밍데일 등 고급 쇼핑가와 미술관 음악당 시설이 몰려 있는 시카고의 중심지역이다.
시카고 릿츠칼튼호텔은 워터 타워 뒤 검은색 행코크빌딩과 나란히 서 있는 74층의 흰색 고층건물 안에 10층부터 31층까지 들어서 있다.
저층부는 고급 쇼핑가, 중층부는 오피스, 상층부는 호텔, 최상층은 고급아파트로 된 복합건물이다. 바로 두 블록을 사이에 두고 릿츠칼튼호텔과 포시즌호텔이 마주 서 있다.
릿츠칼튼과 포시즌스는 세계의 최고급 호텔 시장을 놓고 자웅을 겨루는 양대 호텔체인이니만큼 대도시 시카고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하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두 호텔 모두 포시즌스 체인이다. 릿츠칼튼시카고는 릿츠칼튼이 유일하게 이름만 빌려주고 있는 호텔이다.
릿츠칼튼호텔이 있는 빌딩의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포시즌이 운영을 하게 되었는데, 시카고에서 쌓은 지명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릿츠칼튼과 아직 명성을 구축하지 못했던 신생 포시즌그룹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결국 거대한 시카고 고급호텔 시장은 포시즌이 독점하게 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상층부 메인로비는 엘레강스풍의 포시즌과 클래식풍 릿츠칼튼의 분위기가 혼합되어 있음을 느낀다. 로비 라운지의 한쪽을 시원한 그린하우스로 조성해 건물 속 답답함을 해소하고 있다. 로비층의 여러 레스토랑과 바는 외부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품격을 가진 명소들이다.
그 중에서도 프랜치레스토랑은 시카고 최고의 명소로 꼽힌다. ‘사라’라는 유명한 여자 조리장은 전용주방에서 예약된 손님만을 위해 요리를 만든다. 시카고에서는 이 요리로 손님을 모시는 것이 최고의 접대라고 한다.
도회풍 로비에서 객실로 올라가 방문을 들어서면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넓은 미시간 호수의 장관에 가슴이 뻥 뚫린다. 바로 아래 호숫가 풍경은 리조트호텔보다 못할 게 없다. 내륙 호텔로서 이만한 전망을 가진 호텔은 찾아보기 어려울 터이니 위치의 강점이 너무 뛰어나다.
앞서의 모든 조건을 갖춘 호텔이라도 경영이 부진하다면 명문으로서 의미가 없다.수익이 뒷받침돼야 직원 처우와 서비스의 질을 유지할 수 있으니 경영의 내면은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으로 빡빡하다.
이 호텔에서 각 부서를 돌며 연수할 기회가 있었다. 세계 최고 호텔체인이니 사무공간이나 후방시설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을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었다. 며칠 지나 새삼 둘러보니 이 큰 호텔의 전체 사무실 어디에서도 단 한 개의 소파를 본 적이 없다. 회의실도 물론 없다.
매일 아침 운영회의는 직원식당의 한 켠에서, 부서미팅은 부서장의 책상 주변에서, 임원회의는 빈 고급객실의 다이닝룸에서 하는 식이다. 복도 한쪽을 막아 전화교환실로 쓰는 것을 보고 단 한 구석의 낭비를 허용치 않는 치밀한 경영체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호텔 안에는 거대한 자체 세탁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세탁 업무를 외주로 하면 공간과 비용이 많이 절약될 텐데요”라고 묻자 “린넨의 품질은 우리 호텔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외주를 주면 우리가 원하는 최고 품질의 린넨을 공급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탁설비만은 어렵더라도 자체 운영하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명문호텔이 단순한 과시나 의욕만으로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윤병권 호텔프랜코리아(www.hotelplan.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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