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태칼럼]삼성의 후계경영수업 본격화하나

김의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8.03 11:37

수정 2014.11.07 15:47


최근 오너 3세의 경영권 승계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삼성의 행보가 관심을 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삼성의 오너십 후계자임을 아직 공식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특히 지난 6월 삼성전자가 이상무에게 전환사채 450억원어치를 배당한 것이 편법증여가 아니라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큰 걸림돌이 제거됨에 따라 승계작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그의 경영수업 착수시기나 방법, 과정 등은 이회장과 너무나 닮았다. 이회장 부자는 우연인지 36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나섰다. 이회장은 당시 삼성물산 부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호암 이병철 회장은 계열사를 둘러볼 때마다 아들 이건희 부회장이 현장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항상 수행토록 했다. 또 주요 업무보고를 받을 때도 이부회장을 배석시켰다.

이건희 회장도 부친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바 대로 “경영은 이론이 아닌 실제”라며 이상무가 체험적 교훈을 배울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는 이번주 아테네 올림픽 참관과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사업장 방문을 위한 출장에 이상무와 동행한다. 글로벌 시대에 해외현장을 직접 챙겨야 한다는 뜻과 함께 현장에서 부딪치며 스스로 익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상무는 아직 언론 노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과의 인터뷰는 지난해 8월 고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취재진과 짧은 시간 문답을 나눈 것이 유일한 사례다. 그러나 이미 삼성전자와 소니의 합작사인 S-LCD의 등기이사자격으로 회사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러시아 휴대폰시장 현장을 점검하고 이회장이 주재하는 계열사 사장단 회의와 후지제록스 회장 면담장에 배석하는 등 경영층 모임에도 나타나 후계자 입지를 다진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다.

이재용 상무는 삼성의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여서 이를 통해 관계사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 놓았다. 현재로서는 그가 경영일선 전면에 나설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이회장이 호암 밑에서 10년간 경영수업을 받았으며 호암의 타계로 삼성포디엄에 올라선 예를 참고해 삼성의 경영승계과정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은 국내 최대 재벌이자 세계적 기업으로 삼성이 흔들리면 국가적으로 미치는 악영향이 엄청날 것은 불문가지다. 후계자는 선대 회장 이상으로 그룹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 인물인지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쳐야 마땅하다.

이제 ‘3대 가는 부자 없다’는 속담은 말 그대로 옛말이 돼버렸다. 창업주들의 경영철학과 일생에 관한 탐구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창업 2세들의 승계과정을 지나 어느 새 3,4세들이 경영일선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핵심기업경영에 참여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 3,4세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이외에 정의선 기아차 부사장, 조현준 효성 부사장,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과 두산그룹의 박정원 두산상사BG 사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이재현 CJ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3,4세들은 창업주들이 사회의 비난을 받는 모습을 보며 애를 태웠던 선대와는 달리 자신들 가문을 보는 세상의 시선이 부드러워짐에 따라 당당하게 회사경영에 참여한다. 대부분 자질과 역량이 양호한 편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주위에서도 질투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애정을 갖고 지켜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창업주 후손이더라도 자격미달로 드러나면 후계자에서 제외해야 함은 물론이다. 무능력자인데도 한국식 지배구조 덕에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제치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5대에 걸쳐 에릭슨, 사브, SEB 등 세계적 기업군을 지배해온 스웨덴의 왈렌버그 가문이 최근 투자실패로 위기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오너가문의 경영권 승계를 당연시해온 국내 재계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가문은 부와 경영권을 승계하면서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왔기에 삼성은 이를 벤치마킹해왔다. 그렇지만 최근의 경영위기로 앞으로 가족의 오너십 승계가 불투명해졌다. 어떠한 해결책을 마련할 것인지… 우리에게도 숙제를 안겨준 셈이다.

기업은 구태여 기르케의 법인 유기체설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적자생존의 냉혹한 법칙을 적용받지 않을 수 없다. 발전과 진화를 이루려면 주위의 여건에 따라야 함은 물론 나아가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촌각을 다투며 변화하는 게 현대 하이테크사회의 특징이다. 이 변화의 물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이 최고경영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요, 관심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주변 환경과 똑같은 색으로 변하는 카멜레온형 체질, 그러면서도 목관악기 오보에의 다른 악기와 섞이지 않는 독특한 음색처럼 스스로의 특징을 지녀야 한다.


“냉혹한 사실을 직시하되 믿음을 잃지 말라”는 스톡데일 패러독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이다.

일본의 저명 기업가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기업은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3,4세 경영인들이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성장해줄 것을 기대한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