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영 뉴욕포커스]고유가와 스테그플레이션/미국 롱아일랜드대 교수

송계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8.04 11:37

수정 2014.11.07 15:44


국제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배럴당 45달러에 근접해 있다.

지난해 이맘때에 비한다면 무려 40% 가까이 상승한 것이며 이와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배럴당 50달러의 유가시대를 이야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현재 유가 고공행진의 원인은 원유의 생산 여력은 한계에 부딪치거나 오히려 줄고 있는데 비해 수요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원유의 ‘공급’ 측면에서는 심화되고 있는 세계 각국의 테러위협, 수그러들지 않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험,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러시아 등 거대 산유국들의 정치적 혼돈 사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의 회복과 더불어 중국과 인도가 주도하고 있는 원유의 수요증가는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일본과 같은 전통적인 원유 다소비 국가들의 소비감소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과거 1990년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에도 국제 유가는 35% 이상 치솟았었다.
그러나 당시의 유가는 중동지역의 정치적 불안이라는 일시적 요인이 해결된 뒤 곧 하향 안정세를 되찾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는 다소 다르다.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요인 이외에도 원유의 수급 불균형과 투기적 매수세가 맞물려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전세계 원유 수요가 16년 만에 최고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악재들이 한꺼번에 해소되지 않는다면 10달러 이상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얹어서 원유를 사는 상황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또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안고 있는 현재의 원유 시장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작은 계기라도 발견되면 원유가격은 크게 요동칠 것이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 나라의 경우 이러한 고유가 부담이 고스란히 국내 물가 상승으로 전가되고 있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물가마저 고공행진을 계속할 경우 가뜩이나 침체된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게 되며 이는 다시 개인들의 실질가처분 소득을 떨어뜨려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경기 부양에 나설 경우 물가를 더욱 부추기게 될 우려가 있고 물가를 잡으려고 긴축 정책에 나설 경우 경기가 더욱 위축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바로 여러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실체이며 이를 심각히 걱정해야 할 이유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단점(물가상승과 불황)들만이 나타나는 이러한 경제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국가가 우리가 위기 때마다 비교하는 아르헨티나다. 여기서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 중에 원유가격 상승 등의 외적인 요소 이외에 강성 노조의 투쟁으로 인한 기업의 임금상승 압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많은 통계에서 나타나듯이 우리 나라가 이 점에 있어서도 아르헨티나에 비해 결코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외 여건이 모두 좋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내수와 투자는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고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물가는 오르는데 그나마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마저 증가세가 꺾이면 총체적 경제위기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각종 통계가 이를 시사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우리경제가 아직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며 따라서 구체적인 대책을 밝히지도 않고 있다. 정치권도 입으로만 민생경제를 되뇔 뿐 오로지 정쟁에만 빠져 있다.

이제는 정부와 여야 모두가 위기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때다.
가계부채 및 신용불량자 문제 해소 뿐만 아니라 소득세 완화 등의 적극적인 감세 지원책도 신중히 고려해 볼만한 시점이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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