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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공모價 불신 ‘청약 파행’


거래소 상장 및 코스닥시장 등록을 위한 기업공개(IPO) 시장에 무질서가 판치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그 진원지다. 기관들이 청약을 약속한 공모주 물량에 대해 대규모로 실권, 자신들이 져야 할 부담을 일반투자자, 주간증권사, 발행사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지난 3, 4일 코아로직 공모주 청약에서는 지난 2002년 10월 모닷텔 이후 IPO 공모사상 두 번째로 미달 사태를 초래했다.


◇기관 불성실 수요예측 위험수위=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들어 상장등록공모 대표주관회사로부터 ‘불성실 수요예측’ 기관으로 지정됐거나 예정인 곳은 99곳에 달한다. 수요예측에서 희망가격에 공모주를 배정받고 배정물량을 의무적으로 청약해야 함에도 불구, 실권해 버렸다는 의미다. .

코아로직의 115만주(공모가 2만3000원) 공모에서 고수익펀드와 일반기관의 배정주식은 각 51만7500주(45%), 17만2500주(15%). 이 가운데 44만1109주를 배정받은 S투신운용이 일부만 청약하는 등 고수익펀드 청약률이 22.5%에 불과하자 이를 인지한 일반투자자들이 청약을 기피, 미달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이번 사태는 극도로 혼탁한 현 시장 상황에 비춰볼 때 이미 예견됐다. 지난달 19일, 20일 LG필립스LCD(국내 864만주, 3만4500원) 상장공모 때는 불성실 수요예측 기관이 미래에셋투신운용 등 88개법인에 달했다. 삼진엘앤디의 제일은행, 에쎌텍의 수협중앙회 등도 그 면면이다.

그러나 시장질서 문란 해위에도 불구, 이 기관들은 해당 대표주관회사로부터 일정기간(3개월∼1년) 수요예측이 제한되는 제재만 받을 뿐이다. 반면 기관들이 제 잇속만을 챙기는 사이 LG필립스LCD에서 일반투자자들은 배정주식 363만6494주를 추가로 떠안아야 했다. 코아로직 대표주관회사인 미래에셋증권은 미달된 공모주와 오는 9일 납입결과 미납된 물량을 추가로 인수해야 한다.

◇공모가격 산정 불신감도 극에 달해=이로인해 지난해 8월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 ‘대표주관사의 시장조성의무(상장등록후 주가하락시 1개월간 공모가의 90% 이상으로 공모주를 매입해 주는 것) 폐지’와 ‘고수익펀드의 배정비율 축소’를 골자로 한 인수·공모제도 개선의 취지는 없고 온갖 부작용과 불신만 발행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공모가에 대한 불신도 팽배하다.

올 하반기 상장등록공모에 나선 곳은 8곳. 이 가운데 공모가격이 최저공모희망가액을 웃돈 경우는 단 한 곳도 없다. 대표주관사나 발행사들은 고수익펀드 배정비율이 종전 45%(코스닥 55%)에서 40%(45%, 3월시행, 9월 이후 30%)로 축소됐지만 엄밀히 말하면 고수익펀드 수요예측에서 80∼90%의 비중을 차지하는 6대 자산운용사들이 여전히 막강한 배정규모를 배경으로 사실상 가격 결정권을 쥐고 공모가를 후려친다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무질서와 불신이 난무하는 가운데 유통시장으로 넘어온 신규주들이 증시 침체와 맞물려 주가가 제대로 형성될 리는 만무하다. 지난 6월 이후 14개 신규주 중 주가가 공모가보다 높은 곳은 단 1곳 뿐이다.


이에 따라 시급한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증시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높다. 수요예측 때 기관들도 청약증거금을 지급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 기관들의 실권 우려도 줄어들고 관행처럼 최고한도 내에서 공모주를 신청하는 일도 없어져 제대로된 수요예측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D증권사 기업금융팀 관계자는 “발행시장의 혼탁함은 신규주들의 주가 붕괴로 이어지며 유통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수요예측과 청약을 같은 날 실시하는 방안 등의 신뢰 회복을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swshin@fnnews.com 신성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