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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가 확보위해 피말리는 전쟁…유가 연일 최고가,정유社 원유도입팀 초비상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8.08 11:38

수정 2014.11.07 15:36


연일 4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현대오일뱅크 장지학 원유팀장은 ‘덥다’는 느낌이 없다.

지난달 30일과 이달 4일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 잇따라 43달러와 44달러를 경신하며 사상최고치를 기록했을 때 ‘다시 오일 쇼크인가’라는 생각에 등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장팀장은 출근하자마자 뉴욕, 런던시장과 중동 정세를 체크하고 러시아 ‘유코스’사태도 실시간으로 챙긴다. 돌발상황 발생시 최고경영자에게 메일이나 구두로 직접 보고한다.

이처럼 긴장의 연속이고 시차가 다른 전세계를 대상으로 업무를 챙기다 보니 정시 출퇴근을 해 본 적이 없다. 다른 부서 직원은 주5일 근무이지만 주말 출근도 다반사다.
원유팀 11명의 부서원들도 엇비슷하다.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기준 국제유가가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 50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에너지와 원유에서 추출되는 기초원료를 조달하는 정유·석유화학기업들의 실무부서가 눈코 틀새 없다.

원유 대부분이 1년 이상의 장기계약으로 도입되고는 있지만 정유사들은 유가가 급등락했을 때 손실을 줄이기 위해(헤지) 연간 도입 물량의 30% 정도는 현물시장에서 사온다. 한푼이라도 싸게 사오기 위해서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뉴욕과 런던 금융시장과 현물시장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이라크 사태로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중동 상황도 상시 모니터링한다.

원유매입부서에서 주가, 금리 등 금융시장을 체크하는 것은 투기세력이 증권, 금융시장과 원유시장을 넘나들며 투기를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장팀장은 “국제 투기 펀드들은 원유만큼 돈을 벌기 쉬운 품목은 없다고 보는 것 같다”며 “현물시장에서 가격이 급등, 국내 필요 물량을 대지 못할 때가 발생해 피를 말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정유업계 1위 기업인 SK㈜의 원유트레이딩팀도 ‘최저가격으로 원유를 도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2억5000만배럴을 도입한 SK㈜는 이중 약 35%를 현물시장에서 사올 정도로 현물 의존도가 높다. 최근에는 분쟁지역인 이라크까지 유조선을 보내 값싼 원유를 확보하기도 했다.

SK㈜ 원유트레이딩팀 관계자는 “런던, 싱가포르, 두바이에 지사를 운영하며 정보수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장기계약을 맺은 회사들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전세계 원유 거래망을 가동해 한푼이라도 더 싼 원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유에서 정제되는 석유화학 기초원료 ‘나프타’ 수요 기업들도 국제유가 급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석유화학 산업의 ‘쌀’인 나프타는 지난해 1420만t(40억달러)가량을 수입할 정도로 수입의존도가 높은 품목이다.

지난해 340만t의 나프타를 수입한 삼성아토피나 구매팀 실무담당자인 윤혜섭 과장은 집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해 아예 CNN을 켜고 잠을 잘 정도다.

하지만 유가 50달러, 아니 55달러까지 상승이라는 최악의 사태도 대비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장팀장은 “지난 90년대 걸프전 당시와 비교했을 때 물가는 오르고 달러가치는 하락했다”며 “현재 가격을 90년대 가격으로 역산한다면 50달러를 훌쩍 뛰어넘을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도 대체로 유가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란 시각을 내놓고 있다. 중동 테러 위협, 러시아 유코스 사태, 투기심리 등 수급불안을 해소할 획기적 조치가 없는 한 고유가가 상당기간 지속된다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지는 “올해 안에 50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석유거래업체 퀘스트인터내셔널의 애널리스트 케빈 커는 “45달러는 물론 55달러까지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석유공사도 당분간 유가오름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라크 사태가 악화돼 원유 수출이 중단되고 러시아 유코스사가 원유 생산을 중단하는 등 최악의 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면서 “고유가 장기화에 대비하는 한편, 안정적인 원유공급처 확보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6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석유 비축량은 141만8000배럴로 104일간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다.

/ mirror@fnnews.com 김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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