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증시도 케인즈가 필요하다/임관호 증권부장

임관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8.11 11:44

수정 2014.11.07 15:27


요즈음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 논쟁이 뜨겁다. 그나마 다행이다. 경기바닥론을 갖고 신경전을 벌이던 지난해 이후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다. 경제상황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된 셈이다. 물론 얼마나 잘 대처하는냐와 적절한 시기에 처방을 내놓을 수 있느냐가 문제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좀더 서둘렀어야 했다는 얘기다. 이 논쟁의 시작은 하반기 수출둔화 전망이 단초가 됐다. 특히 수출의 중추인 정보통신산업의 전망이 흐려지면서부터다. 믿고 있던 수출이 둔화될 조짐을 보이자 급해졌을 것이다. 게다가 연일 상승하는 유가와 미국의 금리인상 등 주변 환경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그만큼 경제운용의 운신 폭이 좁아졌다는 얘기다.

통화정책으로 내수침체를 잡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환율도 금리도 손을 댈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어느쪽으로 가든 부작용은 따를 수밖에 없다. 환율을 내려 물가를 잡고 싶어도 수출에 부담이 된다. 미국처럼 금리인상도 생각할 수 없다. 다소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는 신용불량자와 가계대출이 눈에 걸리기 때문이다. 안전자산만을 선호하는 풍부한 유동자금 때문에 금리를 인상한다 해도 그 효과를 담보할 수도 없다. 최근 채권금리가 미국 금리와 따로 움직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런 복합적인 불안요인 때문에 투자는 갈수록 움츠러들고 있다.

그래서 경제해법에 케인스 열풍이 불고 있다.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논쟁이 이것이다. 한편에서는 재정지출을 통한 총수요 확보로 소비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한편에서는 수혜대상을 확대시킬 감세를 통해 기업과 개인의 소비를 부추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귀결은 모두 투자증가에 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투자부진은 여유자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기 때문이다.

케인스가 살아난다면 한국경제에 대해 어떤 처방을 내릴까 자못 궁금해진다. 사상최대의 부동자금을 들어 ‘유동성 함정이론’에 따른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요구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업의 투자부진이 국내투자환경의 취약성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근거한 것이라면 어떤 처방을 내릴까. 또한 기업이든 개인이든 투자하고 싶지만 투자할 대상이 없는 척박한 투자시장에 대해서는 어떤 처방을 내릴까. 당연히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투자유인 대상을 넓히라고 처방을 내릴 것이다. 그것도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강조까지 하면서 말이다. 더불어 케인스는 풍부한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본시장의 활성화도 주문할지도 모르겠다.

1929년 10월24일 대공황의 서막인 블랙먼데이(공포의 검은 월요일)에 케인스도 그동안 꽤 재미를 봤던 주식투자에서 고배를 맛봤다. 부동산과 채권, 주식으로 돈을 많이 모았던 케인스도 이날의 대폭락을 피할수는 없었다. 결국 그런 아픔이 그가 미국경제를 대공황에서 건져내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케인스의 눈에 비친 한국 주식시장은 어떨까. 국내 주식시장은 지난 2년이 어찌 보면 증시부양책이 없었던 해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시장원리에 의해 움직여왔다. 외국인의 시가총액 비중이 절반에 육박해도, 개인들의 환매사태가 잇따라도, 그토록 인기를 모았던 공모주마저 미달사태가 날 정도로 증시의 자금조달기능이 쇠약해져도 단 한건의 부양책도 나오지 않았다. 주식시장만큼 ‘하이에크’의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시장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시장은 수요기반마저 위협받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떠난 지는 이미 오래다. 기관투자가들도 채권투자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뒤늦게 정부가 연기금의 주식투자 활성화 등 수요확충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루한 진행형이다.

우울증에 걸린 경제만큼이나 주식시장도 무기력증세를 보이고 있다. 시가총액이 300조원이 넘지만 하루 거래대금은 지난 98년 규모에 불과하다. 장롱 속 자금까지 포함할 경우 부동자금이 800조원에 달하는 나라의 주식시장 거래대금치고는 너무나 초라하다. 증시상황은 이래도 자금 해외유출은 썰물 현상을 보이고 있다. 상반기에 잡히는 것만 18조원에 이른다. 산업공동화를 넘어 자본공동화를 걱정해야 할 때다.

자생력은 스스로 키워야 산다는 시장주의는 옳다. 그렇지만 현재의 주식시장은 자생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다.
수요기반의 확충을 위해 정책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얼어붙은 주식시장을 녹이는 일이 경제심리를 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주식시장도 ‘케인스의 혁명’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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