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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돈 써야 경제가 산다]“열심히 번돈 쓰는데도 눈치”

노종섭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8.11 11:44

수정 2014.11.07 15:26


‘돈 많은 게 무슨 죄입니까.’ 경기 안성시에서 20여년째 중소기업을 운영, 수십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갖게 된 김모사장(63)은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기 일쑤다.

회사를 지금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키워낼 때까지 일밖에 몰랐던 그는 최근들어 20년전 모습 그대로인 집도 말끔하게 수리하고, 자동차도 최고급으로 사고, 해외 여행도 가는 등 ‘이제 고생 그만 하고 여행도 하면서 편하게 지내시라’는 자식들의 권유에 따라 좀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로 했다.

60평생 누리지 못하던 꿈만 같던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갑자기 돈을 어떻게 번거야, 단단한 동아줄이라도 잡은 거야”라는 등 주위의 곱지않는 시선과 빈정거림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사람이 달라졌다. 돈을 펑펑 쓰는구나. 돈 좀 벌었다고 너무 으시대는 것 아냐…” 등등 수군거림이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김사장은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는 그동안 덜 먹고, 덜 쓰고, 남들보다 더 노력한 결과”라며 “남의 노력을 폄하하는 풍토가 견디기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전기관련 중소기업을 하는 이모사장(47)은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데도 주변 사람들까지도 ‘정경유착이나 탈세 등 부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업인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사장은 “최근에 중국이 전력난도 심각하고 관련 사업 수요도 많다는 얘기에 각종 규제에다 경영 환경도 좋지 않아 한국을 떠나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든다”고 털어놓았다.

이같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기업인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부의 축적을 ‘정당한 노력의 결과’로 보고 존경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뭔가 부정적인 방법을 이용했을 것’이라며 비난의 대상으로 삼고있기 때문에 기업하기 가장 힘든 곳이 한국이라는 말이 쏟아지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상의와 현대경제연구원의 지난 7월 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기업 호감지수는 100점 만점에 39.1점에 불과하고 ‘우리나라 부자들은 부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70.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기업인들의 탈 한국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업 규제들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중국으로 엑소더스를 감행하고 있으며 국내에서의 투자나 소비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대한상의가 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투자부진 요인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63.2%의 기업이 올해 투자계획 대비 실제 집행률이 절반 미만이라고 답했고 하반기에 국내 투자 계획이 있는 기업은 35.5%인 반면 해외투자 계획 기업은 41.3%나 됐다.

삼성전자도 9조원이 넘는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등 기업들이 투자 여력이 충분함에도 국내에서는 돈을 좀처럼 쓰지 않고 있다. 태준제약의 한 관계자는 “현 경제 상황에서는 돈을 가진 기업이 투자를 해야 하지만 오히려 투자를 할수록 피해를 입게 되고 기업 존속이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투자를 하겠느냐”고 주장했다.

기업을 부도덕한 기업으로 보는 국가의 시각도 기업인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기업인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접대비 제한을 들고 있다. 회사는 접대를 영업의 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국가는 이를 비정상적인 것으로만 생각, 규제만 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접대비는 회사의 사정에 따라 대상과 규모를 정할 수 있다”며 “영업의 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규제하겠다는 것은 기업의 영업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제조업체 A사의 회계책임자는 “접대목적과 접대상대방을 기재하는 것은 사업기밀과 관련된 사항으로 상당히 부담스럽다”며 “기업의 영업활동을 미더워 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이 되레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컨설팅업체인 기네스리 그룹의 이왕열 대표이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곧 주인공이며 왕이라는 인식을 사회에서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지금같은 분위기에선 누가 기업을 하려고 하겠는냐”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 mchan@fnnews.com 한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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