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지”/곽인찬 국제부장·부국장대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8.12 11:45

수정 2014.11.07 15:24


“고양이가 검든 희든 무슨 상관인가,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지.”

40여년 전에 덩샤오핑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숙청을 당하기 전의 일이다.

눈이 왼쪽으로만 쏠려 있던 좌파 홍위병들이 ‘흑묘백묘론’을 마뜩찮게 여겼을 게 틀림없다. 몇년 뒤 문화혁명의 광풍 속에 덩샤오핑은 모든 공직을 잃었다. 큰아들 덩푸팡은 베이징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으나 심한 폭행을 당해 지금도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덩은 중국 남부 장시성에 있는 트랙터 수리공장으로 하방(下放)됐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그는 몸이 골골하는 아내와 나이든 의붓어머니를 돌보며 살았다. 방을 치우고 장작을 패고 석탄을 때는 일이 모두 그의 몫이었다. 나중에는 몸이 성치 않은 큰아들까지 합류했다.

숙청 7년만인 73년 그는 저우언라이 총리의 도움으로 부총리로 복권됐다. 이듬해 유엔총회에서는 중국대표로 연설하는 등 화려하게 재기하는 듯했다.

그것도 잠시, 저우언라이 총리와 마오쩌둥 주석의 사망을 계기로 정권을 잡은 4인방은 눈엣가시 같은 덩샤오핑을 다시 공직에서 쫓아냈다. 결국 그는 장칭이 이끄는 4인방과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부총리·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다시 일어서는데 성공했다. 그가 오뚝이라는 뜻의 부도옹(不倒翁)으로 불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덩샤오핑이 78년 전권을 장악하면서 중국의 개혁·개방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먼저 80년 기준 국민총생산(GNP)를 20세기 말까지, 즉 20년 동안 4배로 늘려 인민들에게 비교적 안락한 생활수준을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GNP를 다시 30∼50년 사이에 4배로 늘려 중국이 웬만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게 두번째 목표였다. 중국 경제는 지금 바로 이 과정을 걷고 있다.

개혁·개방은 철저하게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다. 선부론(先富論), 즉 부자들이 앞서가면 나머지는 따라간다는 논리에 따라 개인간 빈부 격차를 인정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말도 나왔다. 나라 전체로는 상하이를 비롯한 동부 연안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먼저 잘사는 길을 터놨다.

덩의 사후(97년) 중국은 장쩌민을 거쳐 후진타오 시대를 맞았으나 개혁·개방의 총설계사가 닦아 놓은 노선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어 보인다. 좀 과장하면 그는 죽은 뒤에도 중국을 통치하고 있다.

덩의 실용주의 정책은 같은 중국인인 공자와 맥이 닿아 있는 듯하다. 2500여년 전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스승에게 물었다.

“죽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삶도 아직 다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논어 선진·先進편)

중국인의 현실주의를 말할 때 노상 인용되는 말이다.

물론 찬사만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89년 천안문 사태 때 탱크를 동원해 유혈진압을 명령한 최종 책임자는 바로 덩샤오핑이었다. 공산당 1당 독재를 통한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에게 그는 무자비한 존재였다.

이같은 흠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늘날 ‘숭배’의 대상이다. 오는 22일 탄생 100년을 앞두고 중국 정부는 요란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줄줄이 상영 중인 가운데 사상 토론회와 기념관 개관식, 동상 제막식도 열린다. 벌써부터 출생지 쓰촨성 광안셴에는 추모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사실 덩샤오핑은 생전에 개인숭배를 크게 경계했다. 마오쩌둥을 신격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그는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당 중앙위원회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은 우리의 임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사후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은 역설적이다.

그렇지만 부러운 일이다. 자발적으로 흠모하는 지도자가 있다는 건 그 나라 국민들의 복이다. 우리나라는 역대 어떤 대통령도 이런 존경을 받지 못한다.
이편, 저편 갈라놓고 자기를 따르는 무리만 감싸안은 결과다. 반면 키 150cm 남짓한 이 ‘작은 거인’은 중국식 실용주의를 통해 가장 폭넓은 계층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우리는 덩샤오핑과 같은 지도자를 가질 수 없을까. 그런 지도자라면 지금 이렇게 말해야 옳다. “좌파든 우파든 무슨 상관인가, 국민들만 편히 먹고 살면 그만이지.”

/ paulk@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