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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해외유출 막아라]올들어 이미 20兆…‘도둑질’ 매년 눈덩이


핵심산업기술의 국외 유출이 심각하다.

소위 잘 나가는 업종으로 분류되는 정보통신(IT) 업종 뿐만 아니다. 조선, 철강, 화학 등 거의 전 업종이 기술유출의 영향권이다.

‘스파이’를 보내는 국가는 매년 10%대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로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는 중국과 대만, 동남아 국가 등 상대적 정보통신 후발국 뿐만 아니라 미국 등 선진국까지 광범위하다. 이들은 호시탐탐 한국의 ‘핵심기술’을 노리고 있다.

핵심기술의 유출이 일반화돼 있다는 사실은 최근 정부가 서둘러 가칭 ‘산업스파이 처벌법’제정을 검토하고 나선 것에서도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정부가 스파이의 기술유출에 대한 방어벽을 시급히 마련하지 않으면 수십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의 기업을 포함한 국가정보 방어망을 총괄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98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굵직한 기술유출 사례는 총 47건에 피해규모는 무려 38조원에 이른다.

올해 들어서도 상반기에만 11건의 산업핵심 기술유출로 피해 예상액이 19조3000억원에 달한다고 국정원은 추정했다.

실제 국정원은 기술유출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스파이에 대한 방어벽 구축을 위해 간첩, 국제범죄,테러와 마찬가지로 신고센터(111)를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기술유출이 기업에 미치는 피해가 단순히 금전손실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술이 유출되면 기술개발 의욕이 저하되고 이후 분쟁에 따른 기업이미지 실추 등 ‘무형의 손실’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그러면 이러한 기술유출은 어떤 업종에서 누구의 손에 의해 저질러 질까.

암암리에 진행되는 기술유출의 실태를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대체로 퇴직사원과 협력업체 직원, 또는 이들과 연계된 내부 연구원들이 ‘주범’ 또는 ‘종범’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최근 서울 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에 적발된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인 A사 연구원의 기술유출 사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홍콩 휴대폰 판매업체인 B사 경영진은 국내 유력 휴대폰 제조업체인 A사 연구원들을 매수, B사 연구소로 전직시켜주고 기술을 빼내오는 조건으로 5000만∼1억2000만원의 인센티브와 스톡옵션, 고액연봉 등을 제시했다.

기술유출을 제안받은 A사 연구원들은 휴대폰 핵심기술을 외장형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아 B사 관계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기술유출 행위는 세계 최고 기술을 자랑하는 휴대폰 분야 뿐만 아니라 액정표시화면(LCD) 생산업종 등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해 6월 현대LCD 직원은 경쟁사인 중국 트롤리사 한국지사인 비젼테크사로 전직을 약속받고 컬러 STN LCD 핵심제조기술�^영업자료를 CD에 담아 유출하려다 적발됐다.

핵심기술의 사외 유출은 이같은 스파이 행위뿐만 아니라 중국 등 해외 제휴선과 협상을 협의하는 중에서도 이뤄진다.

실제 중국 기업이 자국 진출을 노리는 국내 기업과 제휴 협상을 진행하면서 ‘핵심 기술’만을 빼내가고 협상을 깰 경우,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고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IT업종은 물론이고 조선업종에서도 기술유출 사례는 많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형 조선소의 설계도면이 중국 내 조선소 내에서 버젓이 나돌아 다니는 것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술유출, 특히 사내 공모자가 있는 유출는 왜 발생할까.

일단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전자, 이동통신기술 등 정보통신산업을 중심으로 한 한국 기업들의 기술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데 1차적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스파이 사건은 훔칠만한 기술이 있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적극 협조하는 사내 공모자가 생기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밀어닥친 평생직장 개념의 해소가 원인으로 분석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회사원과 기술자들이 노후를 위해 한 몫 잡기 위한 풍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따라 정부와 산업계에서는 산업스파이 처벌법 등 강력한 법 제정과 기업 스스로의 고용윤리 강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기술유출을 제재하기 위한 법률 제정을 산업자원부를 주축으로 관계부처간 혐의 중”이라며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해 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mirror@fnnews.com 김규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