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터미널]어른들을 위한 스필버그식 우화…11년간 공항 노숙자 실화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8.19 11:46

수정 2014.11.07 15:06


‘어른들을 위한 1편의 우화’로 읽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새영화 ‘터미널’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서 출발한다.

지난 88년 유엔이 발급한 난민증명서를 분실, 11년간 파리 드골공항을 집삼아 생활해야 했던 이란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 톰 행크스가 열연한 ‘터미널’의 주인공 빅토르 나보스키는 실존인물 나세리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동유럽의 가상국가 크로코지아에서 뉴욕으로 여행을 온 나보스키는 뉴욕 JFK공항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오는 사이 조국 크로코지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그의 여권이 휴지조각이 된 것이다. 미국으로 입국할 수도, 조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나보스키는 공항에 머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공항을 미국사회의 축소판으로 여기는 듯하다.
공항에는 스타벅스, 버거킹, 나이키 등 미국문화를 상징하는 간판들이 즐비하고 다양한 국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붐비는 대합실은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또 그곳엔 어김없이 인종차별과 계급차별이 존재한다. 실제로 스필버그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공항에서는 식사를 할 수도 있고 쇼핑도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 공항은 사회의 작은 축도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관심은 이른바 ‘공항의 사회학’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머물다 떠나는 곳, 터미널에서 그는 작은 웃음과 1편의 감동 스토리를 건져올리려 애쓴다.

선과 악의 구별이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세상물정 모르고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나보스키의 대척점에 놓인 공항관리국 총책임자 프랭크(스탠리 투치)는 영화 ‘터미널’을 끌고 가는 또다른 축이다.

나보스키를 공항의 미관을 헤치는 골칫거리로만 여기는 프랭크의 온갖 방해공작을 뚫고 나보스키가 차츰 공항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할 때마다 관객들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나보스키를 응원한다. 하지만 언뜻 성공 지상주의자로만 보이는 프랭크마저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에선 악인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터미널’에는 로맨스도 있다. 이별과 기다림에 익숙해진 항공사 승무원 아멜리아(캐서린 제타존스)는 우연히 마주친 나보스키와 친구가 되고 외로움에 지친 그녀는 스스럼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런 아멜리아에게 잠깐 연정을 품는 나보스키의 모습은 순수하고 귀엽기까지 하지만 현실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한편, 지난 6월18일 미국에서 이미 개봉한 ‘터미널’은 오는 9월1일 열리는 제6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베니스영화제측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스티븐 스필버그, 톰 행크스, 캐서린 제타존스로 이어지는 황금라인에 입맛이 당겼을 것이다. 한국개봉은 27일.

/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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