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했던 마음도 그리움이었어요”…입양 36년만에 생모 찾은 정 제니스 몰리

문영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8.29 11:47

수정 2014.11.07 14:40


“2주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했어요. 어머니를 원망했던 것을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36년만에 찾은 조국 한국에서 그리운 어머니를 만난 정 제니스 몰리씨(37). 꿈에도 그리던 친어머니를 만난 사실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 듯 정씨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지난 68년 생후 6개월의 흑인 혼혈아였던 정씨는 입양기관을 거쳐 머나먼 타향 네덜란드로 입양됐다.

이번 방한은 생애 첫 모국 방문이자 36년만의 귀향. 그러나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어머니의 이름과 주소, 입양 당시 여권만이 그녀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정씨는 네덜란드에서의 생활도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혼혈아라는 이유로 한국인도, 네덜란드인도, 아프리카인도 될 수 없었어요. 어느 문화에도 속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던 것 같아요.”

정씨는 혼혈에 대한 편견이 유독 심한 한국 상황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한국에서는 특히 혼혈아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고 들었어요. 아마 어머니도 흑인인 아버지를 사랑해서 저를 낳았겠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떠난 후, 제가 한국에서 자라며 받게될 고통을 걱정해 입양을 결심했겠지요.”

그러나 정씨의 마음 속엔 친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담겨 있는 둣했다.

“어머니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어요. 저를 사랑해서 보낸건지, 아니면 짐스러워서 그런건지….”

정씨가 어머니를 만나게 된 것은 TV 때문이었다. 지난 11일 KBS 1TV ‘아침마당’에 출연해 자신의 한많은 삶을 털어놓았던 정씨는 방송을 본 한 제보자의 도움으로 경북 구미에 살고 있는 어머니와 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36년만에 만난 어머니는 비구니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 정모씨는 어린 딸을 떠나보낸지 5년 후 속세와 인연을 끊고 불교에 귀의했다.

지난 9일 어머니를 찾아달라며 본지를 찾았을 때만해도 굳은 표정과 무뚝뚝한 말투로 친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던 정씨는 정작 어머니를 만나자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린아이처럼 엄마 품에 안겼다.

어린 딸을 입양보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은 과연 어댔을까. 머리를 깍고 이젠 스님이 된 어머니 정씨는 “딸에게 밥 한번 지어주고 싶었다”면서 “너무 큰 소망이라고 할지 몰라도 꼭 한번만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며 통곡했다.


소원대로 딸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 줄 수 있게 된 어머니 정씨는 딸과 함께 한국에 온 네덜란드인 사위 젠 보스마씨의 큰절을 받으며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어머니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만 봐도 얼마나 저를 그리워 했고 저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오히려 이제와서 찾은 제가 죄송할 뿐입니다.


어머니와의 꿈같은 1주일을 한국에서 보낸 정씨는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해서 꼭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지난 23일 삶의 터전인 네덜란드로 떠났다.

/ jinnie@fnnews.com 문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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