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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의 삶과 도전-허석호 <1>]중1때 학교특별활동으로 입문

정대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8.30 11:47

수정 2014.11.07 14:38


2004년 7월18일, 토드 해밀턴(미국)이 질곡과도 같은 기나 긴 무명시절을 청산하고 브리티시오픈서 마침내 챔피언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 보며 ‘필드의 철학자’ 허석호(32·이동수F&G)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것은 해밀턴의 성공이 허석호 본인이 현재 상금랭킹 1위에 랭크되어 있는 일본투어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이루어 낸 쾌거였기에 그 점을 감안했을 때 자신도 충분히 중원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의 발로였던 것이다.

허석호는 지난 2003년 브리티시오픈서 혜성처럼 등장해 대회 3라운드까지 선두권을 유지했으나 마지막 라운드에서 경험부족으로 인해 급격한 난조에 빠지며 최종 26위에 오르는데 그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황색돌풍’의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그가 보여 준 인상적인 플레이는 전세계 골프팬들의 뇌리에 자신의 이름 ‘S. K. HO’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그는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올 한해 일본 PGA선수권과 JOT오픈 등 2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일약 일본 랭킹 1위에 올라 그 자격으로 꿈의 무대인 브리티시오픈, 미PGA선수권, 그리고 별들의 전쟁인 WGC-NEC인비테이셔널에 초청 받아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브리티시오픈서는 예선 탈락을 했지만 나머지 두 개 대회에서는 컷오프를 통과해 각각 55위, 27위의 선전을 펼쳤다.

이를 계기로 허석호는 미국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으며 언론은 허석호의 행보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허석호, 그는 73년 8월20일 부산에서 아버지 허재현프로(64·용인 수지 롯데 골프골프아카데미 대표)와 어머니 이승애씨(58) 사이의 2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가 처음 골프를 접하게 된 것은 부산 대연중 1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당시 부산 대연동에서 동광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있던 허재현프로는 아들에게 특별활동시간을 활용해 골프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향을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의외로 아버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로부터 1년간 연습을 한 후 그는 시합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업과 연습을 병행한 골프여서인지 그는 대연고 2학년 때 중·고연맹회장배에서 2위를 차지하기 전까지 약 5년간 입상이 전무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석호가 포기하지 않고 무명의 시기를 잘 극복하고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골프를 시작한 지 2년 후부터 골프에 대한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그것이 과묵, 책임감, 강한 승부욕으로 대변되는 그의 성격과 접목되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한번 입상의 물꼬를 트게 되자 그는 각종 주니어대회에서 입상이라는 봇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golf@fnnews.com 정대균기자

■사진설명

아마추어시절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국내외 대회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으로 지존에 올랐던 허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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