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은 내가 꿈에도 그리던 곳이다. 어느해인가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나니 얼마간 여유가 있었다. 다음 촬영까지는 1달 정도 시간이 남아 있어 난 독서나 하면서 지낼까 하다가 어머니와 함께 설악산을 갔다. 가을 낙엽이 포도에 흐드러지는 그런 날이었다.
차를 몰아 서울을 빠져 나가자 닫혀 있던 마음이 개인 하늘처럼 청명해 왔다.
5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강원 양양. 우리는 그 바닷가 도로를 타고 속초로 올라와 넘실대는 동해의 시리도록 푸른 파도를 오후 내내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푸르렀던 기운이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흩뿌려 놓은듯 변해가고 있는 설악이 내 품에 들어 왔다. 우리는 설악산 내에 있는 켄싱턴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설악의 품안에 살포시 안겨 있는 듯 부끄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맞은 켄싱턴 호텔은 내가 가본 외국 어느 최고급 호텔 못지 않았다.
정갈하면서도 클래식한 느낌이 우러나오고 풀벌레 소리도 정겹게 들리는 아늑함이 나그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다. 숲의 향내가 밤새 나의 온몸을 감싸주는 듯 해 촬영에 지친 심신을 풀기에는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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